20일(현지시간) 취임식이 거행된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과 국립공원, 취임 축하 행진이 진행된 펜실베이니아 대로 일대는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환호하는 인파와 성조기 물결로 장관을 이뤘다.
그러나 축제의 달콤한 즐거움도 잠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좌초 직전의 미국 경제를 건져올려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게 된다.
1930년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치닫은 경제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압도적인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그러나 당선된 그 순간부터 `승리의 발판`은 `지상 최대 과제`로 돌변했다.
미국민이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그러나 높은 기대는 깊은 실망으로 이어지는 법. 그 기대와 실망의 위태로운 간극 사이에 오바마가 이끌어갈 미국 경제의 가혹한 운명이 놓여 있다.
◇`기대와 현실 사이`..경제과제 `산적`
오바마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AP통신이 시장조사업체 GFK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 국민들의 65%가 `오바마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기대가 팽배하다. 응답자의 71%가 오바마 취임 첫 해에 경제가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고, 65%는 실업률이 낮아질 것으로 봤다. 72%는 증시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고, 63%는 빠듯해진 개인 경제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처럼 낙관적인 기대감이 실현되기에 미국 경제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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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금융불안은 진정되기는 커녕 점차 깊어지는 양상이다. 최근 지난해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나마 건전한 것으로 평가됐던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마저 위기로 내몰리면서 새해 벽두부터 금융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경기후퇴로 은행들의 부실이 심화되면서 올해 수 백 여개의 은행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구제금융 수혈로 임시적으로 생명을 연장한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의 목숨도 위험하다. 양사는 오는 3월말까지 장기적인 회생계획을 내놓지 못하면 파산보호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8250억弗 신(新)뉴딜정책 `통(通)할까`
오바마의 `역사적 사명`은 단연 `경제`다. 취임 이후에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오바마는 이날 취임식에서도 경제위기와 관련해 "과감하고 신속한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반을 닦기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할 예정인 2년짜리 경기부양책 규모는 8250억달러로 당초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던 7750억달러보다 커졌다. 이는 지난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고속도로망 건설 이후 최대 규모.
이같은 정책은 대공황 탈출을 주도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과 유사하다. 1933년 대공황 위기가 한창일 때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100일간 15개 주요 입법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오바마가 루즈벨트와 같이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오바마판 `신(新) 뉴딜정책`이 미국 경제를 대공황에서 탈출시킨 뉴딜정책처럼 성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감세로 미국 경기부양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기고문을 통해 "감세보다는 직접적인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감세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는 극빈층을 대상으로 할 때와 감세로 절감한 비용을 투자로 돌리는 조건으로 기업에 감세 혜택을 제공하는 할 때 뿐"이라며 "가계 부채가 급증하고 부동산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감세를 통해 소비진작과 경기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거대한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향후 2년간 30조달러 이상의 상품과 서비스 생산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소비지출과 기업투자가 가파르게 위축되고 있어 생산과 수요 사이에 거대한 격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격차를 메우기에는 오바마가 제시한 부양책이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업세금 감면 등 감세안이 실제로 소비 진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위기를 예측해 주목받고 있는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오바마의 경기부양책 규모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오바마는 최근 금융위기와 경기후퇴의 근본적인 원인인 주택가격의 하락세를 멈추기 위해 최대 1000억달러를 투입해 주택차압 사태를 진정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지난주 승인받은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의 3500억달러도 주택시장 활성화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오바마는 또 금융권의 부실화를 차단하기 위해 일종의 `배드뱅크`인 정부은행을 설립해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방안을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1980년대 미국 저축대부조합(S&L) 파산사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정리신탁공사(RTC)과 유사한 방식이다.
◇낙관vs비관 `팽팽`..취임 100일이 `관건`
낙관론자들은 미국 경제가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올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미국의 경기후퇴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높아진 눈높이는 의식한 듯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하이오주의 풍력발전소 터빈을 만드는 공장을 방문, "경기회복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취하고 있는 대책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바닥을 치기 전에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현실적인 인식을 갖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해부터 수 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미국의 경기후퇴를 막지 못했다. 게다가 경기후퇴의 장기화로 인해 부실은행들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GM과 크라이슬러를 비롯해 파산 위기로 내몰리는 기업들이 얼마나 더 속출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제 막 닻을 올린 오바마호(虎)의 운명이 오바마노믹스의 성패에 달렸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부시 행정부의 정책적 실수를 바로잡고 경기 부양에 성공한다면 그는 루즈벨트와 같이 역사적 위기를 극복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뉴스위크지는 최근 이와 관련해 취임 직후 100일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