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장기 국채 매입 등 공격적인 `양적 완화(Quantative Easing)` 정책을 펼쳐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지난 1954년 연준이 지표금리 제도를 도입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를 연 것이다. 월가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로써 연준은 지난해 9월 이후 총 10차례에 걸쳐 5~5.25%포인트의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연준은 또한 성명서를 통해 제로금리를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장기 국채와 모기지유동화증권(MBS) 매입 등을 통해 통화 공급량을 늘리는 공격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구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간의 공격적인 금리인하와 유례없는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금융위기의 해소와 전후 최악의 후퇴(recession) 국면에 놓인 경기 부양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연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경기우려 수위 높여..`인플레→디플레` 초점 이동
연준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경기에 대한 우려를 높이는 한편,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더욱 낮췄다.
실제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는 전후 최악의 후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이미 지난해말 후퇴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가운데 그간 무려 2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률은 6.7%로 15년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경기후퇴 국면이 깊어지면서 오는 2010년초까지 300만명의 추가 실업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위기의 근원지인 주택시장도 여전히 침체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11월 신규주택 착공 건수는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위축됐다.
연준은 반면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욱 낮췄다. 연준은 "인플레이션 압력은 뚜렷하게 감소했다"며 "에너지 및 다른 상품가격의 하락과 경기둔화로 인플레이션은 향후 수 분기 동안 완만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우려의 초점은 `인플레이션`에서 `디플레이션`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
이날 발표된 11월 소비자물가는 역대 최대폭인 1.7% 떨어져 경기둔화로 인해 물가가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유가가 불과 4~5개월만에 100달러 이상 폭락하면서 물가 하락의 주요 배경이 됐다.
◇`제로금리` 상당기간 유지-`헬리콥터 벤` 불사
연준은 이와함께 `제로금리`를 상당기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격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구사하겠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헬리콥터 벤`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강력한 양적 완화책이 절박한 상황임을 드러낸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연준은 "취약한 경제여건이 당분간 예외적으로 낮은 수준의 기준금리를 보장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연준은 구체적으로 ▲대량의 기관 채권과 MBS 매입과 규모 확대 ▲장기 국채 매입 검토 ▲가계와 소기업의 신용 확장을 위한 `TALF(Term Asset-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를 양적 완화 정책으로 제시했다. 또 다른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등은 연준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모기지 증권 뿐만 아니라 상업용 모기지 증권 등으로 매입 대상과 규모를 점차 늘려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은 앞서 지난달 주택매입자와 소비자, 중소기업의 신용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총 800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연준은 모기지 시장 지원을 위해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으로부터 6000억달러의 채권과 모기지유동화증권(MBS) 등을 매입하고, `TALF`를 도입해 학자금과 자동차, 신용카드 등 소비자 대출과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 200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공격적인 양적완화책을 구사하면서 연준의 자산운용 규모는 최근 두 달간 8500억달러에서 2조2500억달러로 급격히 확대됐다. 연준은 향후 1조달러 이상의 유동성을 추가 공급하기로 한 상태다.
◇`유동성 펌프질` 폐해 우려도
이코노미스트들은 연준의 이같은 `유동성 펌프질`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그 폐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연준이 장기 국채 매입에 나설 경우 국채 시장에서 가격 왜곡 현상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버냉키 의장이 장기 국채 매입을 시사한 이후 미국 국채 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가 행진을 지속하면서 `버블` 경고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나친 유동성 펌프질이 또 다른 거품을 양산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프린스턴 대학의 앨런 블라인더 경제학 교수는 "연준은 일정 시점에 이르러 창출한 모든 유동성을 파괴해야만 할 것"이라며 "금융기관들이 현금을 움켜쥐려고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종료되면서 창출된 유동성이 시장에 남아 떠돌게 될 경우 극도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할인율도 0.75%p 인하-만장일치 승인
한편 연준은 이날 민간은행들에게 대출할 때 적용하는 재할인율도 1.25%에서 0.5%로 0.75%포인트 낮췄다. 이날 금리인하는 만장일치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