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한달 보름 지나 보도됐나
이 사건은 지난 3월8일에 발생했다. 하지만 4월24일 연합뉴스에 첫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왜 이런 시차가 있었던 것일까.
사건 발생 직후부터 증권가와 언론 쪽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여의도 증권가에 나도는 정보지(속칭 ‘찌라시’)에 김 회장 보복 폭행 건이 거론됐고, 한국일보와 국민일보, MBC, KBS 등이 이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거나 제보를 받았다.
사건 발생 나흘째인 3월12일, 이와 관련된 제보를 받은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사건 현장이었던 서울 북창동 S술집의 조모 사장을 만났다. 조사장 지인의 상가(喪家)에서 직접 폭행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조사장이 “한화측의 합의 요청이 있고 나도 이 건을 덮고 가기로 했다”며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하는 바람에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일보 역시 제보를 받은 뒤 2~3일 취재를 시도하다가 사건 당사자들이 모두 부인하는 바람에 중도 포기했다. MBC와 KBS 역시 사건 취재를 시도하다가 당사자와 경찰 모두 확인을 해주지 않아 기사화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언론사들은 피해자와 한화측이 모두 언론 보도를 원하지 않은데다, 경찰이 ‘모르쇠’ 작전으로 나오는 바람에 보도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서울시 경찰청 출입기자 사이에서도 이런 첩보 내용이 나돌았지만, ‘워낙 황당하고 소설 같아서’ 기사화해야겠다는 생각은 대부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연합뉴스가 처음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연합뉴스 공병설 시경 출입기자는 “타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어느 정도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건을 제보 받은 즉시 취재에 나서 4월24일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모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당하자 경호원 등을 동원해 보복성 폭력을 휘둘렸다는 첩보가 입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가 나오고 사흘 뒤 4월27일 한겨레신문이 김 회장의 실명을 거론한 뒤 그가 직접 폭력에 가담했다고 보도하면서 사건은 확대됐다.
한화측은 경찰이 이번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것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이 사건 관련자들을 내사해왔다”며 “경찰 관계자가 언론에 제보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늦게 제보를 접한 연합뉴스가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 내사(內査)를 했던 내용인 ‘3월28일자 경찰 첩보보고서’를 입수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리 취재에 나선 언론사들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연합뉴스의 경우 경찰이 작성한 문건이 있었기 때문에 김승연 회장의 실명만 공개하지 않고 사건의 내용을 보도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과연 모든 대기업이 경호조직을 운영하는 것인지, 과연 그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한화와 삼성그룹, 현대차 등은 경호원들을 별도로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경호팀이라는 이름 대신 비서실의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한화의 경우, 김 회장 직속 경호원들은 8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조직상에는 경호관련 팀은 없다”고 말했다. 언론에 보도된 ‘경호과장’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그런 직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비서실 소속으로 되어있다. 2~3명이 한 조(組)가 돼 경호를 하며 3교대로 운영된다. 경호원들은 대부분 청와대 경호실이나, Y대와 H대 출신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정상 승진이 보장되는데다 웬만한 직원들보다 대우가 낫다고 말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계 순위 10위인 한화에서 유독 경호팀이 눈에 띄는 것은 김회장 개인 특유의 ‘과시하는’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직접 면접을 통해 경호원들을 특채하고 있어 일반 직원들은 이들의 실체에 대해 접근이 곤란하다.
김회장의 폭행 현장에 함께 했던 일부 건장한 청년들은 한화의 건물 경비 등을 담당하는 S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이 회사 대표 오모씨는 한화 출신이다.
삼성은 ‘에스원’에서 파견나온 직원을 중심으로 이건희 회장 경호팀을 가동하고 있다. 에스원측은 “이 회장과 가족들의 경호를 위해 직원들이 파견 나가 있다”며 구체적인 인원이나 경호 시스템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하지만 한 경호업체 사장은 “평상시에도 이 회장 경호에만 6명의 경호팀이 가동된다”며 “아들과 딸 등 가족에 대해서도 1~2명씩 경호원이 따라붙는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 출신들이 삼성에 상당수 정식 직원으로 고용돼 있다”고 말했다.
경호업체는 “기업에 채용된 경호원들은 단일 종목 4단 이상의 무술실력과 순발력 등이 탁월한 자들로 구성된다”며 “회장들의 일정이 외부에 노출돼 있지 않아 경호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LG, SK, 두산 등 나머지 대기업은 경호원들을 두고 있지 않았다. 이들 회사의 회장들은 수행비서를 대동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 역시 계열사나 하청업체 노조들의 시위나 테러 위험 발생 등 회장에 대한 경호가 불가피할 경우, 경호업체와 계약 형식으로 경호원들을 일정 기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경호·경비업체 수는 2500여개. 종사자 수는 약 12만 명에 이른다.
# 청담동 술집은 어떤 곳
사건의 발단이 된 서울 ‘G가라오케’는 청담4거리 근처 빌딩 1층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내외관 인테리어나 술값 등이 A급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자주 찾는 곳은, 바로 주변에 있는 H가라오케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위 업소 관계자는 “김 회장 아들이 왜 H가라오케가 아닌 G가라오케로 갔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아마도 H가라오케에 빈 방이 없어서 그곳으로 갔을 것이라는 게 유력한 해석이다.
일반인들에겐 청담동은 부유층 자제들만 드나드는 A급 업소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좀 다르다. 청담동은 술집 종업원이나 접대부들도 근무가 끝난 뒤 새벽 2~5시에 모여 자기들끼리 스트레스를 풀며 술을 마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이 청담동에서 술을 마셨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G가라오케는 국산 양주 1명, 안주, 기본음료, 맥주 5병 등을 기본으로 해서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룸 DJ(방에 들어와 음악을 틀어주는 도우미)는 없다. 이런 업계에서는 룸 DJ의 유무가 가라오케의 등급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다. 이곳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손님들이 대부분이며, 유흥업소 종업원들도 최근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