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들은 우리 교육 시스템이 이미 심각한 수준의 모순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선 교사 개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불합리와 비상식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가정과 학교의 기능이 동시에 붕괴된 모습이 백출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한 만인과의 투쟁이 학부모의 몫인가. 의무와 권리는 ‘디케’의 여신의 저울과도 같은 것이다. 우린 무엇을 지향해 왔나. 공교육, 사교육을 구분하면서 말로만 교육적이지 않았나. 무너져 내린 교실을 무감각한 상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무원에 대한 갑질도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인데 이제 교사를 향한 막무가내 갑질이 민낯을 드러냈다. 이것도 국민의 권리인가. 이는 법의 부작용이 잉태한 사회적 테러 아닐까. 여야와 정부, 시·도교육감이 한 자리에 모여 무너진 교권의 회복과 보호를 위한 입법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매우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이나 논의의 범위와 초점이 교권강화에만 머무르면 안된다. 우리의 젊은 교사들이 더 이상 자포자기하지 않고 교직의 보람과 기쁨을 충만히 누릴 수 있으려면 교권강화 너머 본질적 기능회복을 궁리해야 한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자라나는 후속 세대에게 우리 공동체가 공유해야 할 공통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아무리 학교가 입시와 취업을 위한 교습소로 전락했더라도 여전히 학교의 역할이 있다. 가족, 사회, 국가, 민족이라는 가치가 고리타분한 것이 되고 인문학과 윤리가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시민사회의 공동체주의는 안에서부터 곪았다.
그동안의 교육개혁 논의가 본질을 다루지 못했던 이유는 교육을 수요와 공급 법칙에 기반한 시장논리로만 접근해 왔기 때문이다. 교사의 가르치는 행위를 노동으로 다루게 되면 학생의 배움은 교사의 가르침을 돈 주고 사는 매매행위가 된다.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엔 거래하는 재화와 용역의 현재 가치만 있을 뿐 미래의 가치는 중요치 않다. 인간, 사회, 국가의 미래적 가치를 견인하고 창조해야 할 교육을 시장논리, 경제논리로 접근하면 인성과 가치관은 효율성을 저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될 뿐이다. 오늘의 교육현장의 붕괴는 ‘교육 서비스’라는 말을 써가며 교육을 시장 논리로 다루어 온 결과일지 모른다.
소프트파워가 만들어가는 미래 세대가 살아내야 할 백년의 생존형 교육의 모습은 무엇이어야 하나.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을 바꾸어 준 힘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국가와 차별화되는 교육 경쟁력이 다음 세대에도 지켜져야 할 소중한 국가유산이다. 위대한 대한민국과 우리 후손들을 위한 필살기이다.
교육은 진정 우리 사회의 명운을 결정지을 힘이 있다. 예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다. 이제 교육은 100년의 생존권이 돼야 한다. 100세 시대를 살아갈 내 아이들의 굳건한 무기여야 한다. 산업화 시대 우리의 교육이 지나치게 입시만을 향해 줄달음 한 한계는 있을 수 있으나 가정에 대한 의무, 국가를 향한 헌신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1970~80년대 그토록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공유된 가치관을 바탕으로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헌신하는 국민들을 길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학벌의 높고 낮음과 지식의 깊고 얕음, 돈의 많고 적음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교육 개혁의 본질은 생각보다 가까이, 더 단순하고 명쾌한 형태로 우리 곁에 있을지 모른다.
단지 학제 개편, 시험 선발방식 변경, 대학구조개혁, 아니면 미시적인 교육 내용과 교수 기술 등의 방법에 대한 논의 등은 그 길이 아니다. 원대한 심모를 세우고 실질적 단기적 혁신만이 말뿐인 정치적인 교육개혁을 진정한 혁신으로, 미래 국가전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차제에 교육 행정 전반의 기획, 관리, 감독기능의 미래형 구조화도 리스트럭처링 돼야 한다. 물론 교육의 정치화의 주범인 교육감 선발 제도의 근본적 쇄신도 선행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