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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클래식계의 낭보는 지휘자 윤한결(29)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이하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수상이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이름을 딴 국제 경연대회에서 한국인 지휘자가 상을 받은 것은 윤한결이 처음이다. 클래식계의 미래를 이끌 젊은 지휘자들의 대표적인 등용문으로 수상자에게는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지휘 기회가 주어진다. 심사위원단은 “윤한결의 지휘는 카리스마 있고 준비가 철저히 돼 있으며 기술적으로 뛰어났다”며 “그의 지휘는 음악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한다는 점을 느끼게 해 줬다”고 평했다.
윤한결은 한국 클래식계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젊은 지휘자다. 지난해 11월 영국 클래식 아티스트 전문 매니지먼트사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 계약을 맺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아스코나스 홀트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 다니엘 바렌보임과 첼리스트 요요마, 한국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 김선욱 등이 소속돼 있다.
윤한결의 이번 수상은 ‘K클래식’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지휘자 성시연(2006년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 2007년 제2회 말러 지휘 콩쿠르 1위 없는 2위), 차웅(2017년 토스카니니 국제 지휘 콩쿠르 1위 없는 2위) 등의 뒤를 이어 오랜만에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얻은 성과이기 때문이다. 박선희 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는 “과거 정명훈이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2위를 차지한 뒤 카퍼레이드했던 것만큼 임팩트가 큰 수상”이라며 “정명훈의 뒤를 이을 차세대 지휘 스타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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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이 해외 콩쿠르에 도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 무대에서 연주자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다. 클래식 연주자 입장에선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빠른 관문이 콩쿠르다. 해외 유명 콩쿠르에서 우승할 경우 남성 연주자들에게는 예술요원으로 병역 복무를 할 기회도 주어진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교육열과 경쟁 문화가 더해지면서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 클래식 관계자는 “한국의 남다른 교육열은 영재 교육 등을 통해 실력 있는 연주자를 계속 배출할 수 있는 근간”이라며 “부모가 음악을 하는 자녀를 지원하는 의지도 외국보다 더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서양에서 클래식 전공자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도 한국 연주자들의 콩쿠르 성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해외 유명 음악대학에 다니는 한국인 연주자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국립심포니의 ‘KNSO국제아카데미’를 위해 한국을 찾은 독일계 한국인 첼리스트 최우식은 “몇 년 전 대학(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악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한국인 학생은 몇 명 안 됐는데, 지금은 한국인의 숫자가 일본 학생들보다도 훨씬 많다”며 “클래식의 흐름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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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클래식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콩쿠르 입상자를 위한 더 많은 국내 무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콩쿠르 입상자 중 소수의 연주자만이 ‘스타’가 되지만, 대부분은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한국 연주자들이 콩쿠르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국내에서는 클래식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자생적인 소비 시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기업들의 후원 또한 지나치게 콩쿠르 입상자에게만 쏠리지 말고 전체적인 클래식 시장 저변 확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콩쿠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오히려 음악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콩쿠르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대표적인 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쇼팽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렸던 대회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지난해 유네스코 산하 국제음악경연대회 세계연맹 회원 자격이 박탈당해 위상이 떨어졌고, 예술요원 선정 기준에서도 제외됐다. 이런 분위기에도 한국인 연주자들이 대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했고, 결국 러시아와 한국이 상을 나란히 나눠 가졌다.
콩쿠르 입상은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경력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의 젊은 연주자들은 콩쿠르를 성적보다는 경험의 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연주자들이 우승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1년 제63회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김도현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콩쿠르는 저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무대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음악을 알리고 이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연주자로서 소중한 기회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