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예고된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이 동네 반지하방에 거주하는 고모(61·여)씨는 이렇게 말하며 창문을 응시했다. 고씨는 지난해 11월 딸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를 온 뒤 비가 오는 날이면 창문 밖에 나무판자를 세워 두는 등 대비를 해왔다. 비가 내릴 때마다 크고 작은 침수 피해를 입어서다. 하지만 비 피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고씨조차도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는 ‘물막이판(차수판)’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그는 “강남구청이 물막이판을 설치해주는 것을 알았다면 딸하고 선잠을 자진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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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와 남부지방이 극심한 장마 피해를 입은 가운데, 지난해 물난리를 겪은 서울 강남에서도 반지하 주민들을 중심으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난해 8월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은 뒤 반지하 주민 등을 대상으로 차수판을 무료로 지원해준다고 했지만, 정작 주민은 이러한 지원책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차수판이 필요한 반지하 가구에 설치는 부진한 상황이다. 18일 강남구청에 따르면 강남구 내 반지하 총 5546가구 중 차수판 설치 가구는 누적 1447가구(26%)에 불과했다. 지난 7일 기준 서울시 ‘자치구별 차수판 설치대상 및 설치현황’을 확인해도 차수판이 필요한 강남구 반지하가구 총 578가구 중 설치 완료된 가구는 단 116가구(20%)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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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역삼동의 한 반지하 빌라를 소유한 50대 집주인 곽모씨도 구청 등으로부터 차수판 설치에 관한 안내받지 못했다고 했다. 곽씨는 “상식적으로 물이 들어오면 내 집이 망가지는 문제니까 내가 나서서 설치해달라고 할 판”이라면서도 “공지를 받아본 적도 없고 세입자 중에서도 뉴스를 열심히 보는 사람이야 알겠지만 대부분 모르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침수 피해를 겪은 강남구 논현동 빌라의 박모(85)씨 역시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 몰랐다”며 “맨홀 같은 건 구청이 일일이 수리해줬는데 (직원이) 와서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이에 지자체는 차수판 설치에 관한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방문 조사를 하고 있지만 낮에 집을 비운 주민을 접촉하기 어렵다”며 “현재 자치구와 회의를 통해 설치를 독려해 이달 말까지는 대상 가구 설치를 마치려고 한다”고 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반지하 주민들에) 문자 알림 서비스를 확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