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아리 산 채 갈려도 현안 아니라는 정부[헬프! 애니멀]

독일, 스위스, 프랑스 수평아리 분쇄 종식 선언
한국, 산 채로 분쇄도살…동물보호법 학대 혐의
정부, 수평아리 인도적 도살 지원 계획 전무
관계자 "문제 인식하나 관련 법 개정 선행돼야"
  • 등록 2022-09-26 오전 6:00:00

    수정 2022-09-26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삐악삐악’ 태어난 지 30일 안팎의 수평아리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실려가다가 ‘뚝’하고 떨어졌다. 벨트 끝에 놓인 분쇄기가 쉴 틈 없이 수평아리들의 몸을 짓이긴다. 수평아리들은 달걀을 낳지 못하고 고기로 쓰일 수 없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살처분된다.

독일 등에선 2022년부터 수평아리 분쇄 도살이 금지됐다. 이를 구제할 관련 기술도 개발됐지만, 한국 정부는 ‘현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떨어져 분쇄기로 빨려 들어가는 병아리들 (사진=연합뉴스)
수평아리, 1년에 70억마리 갈아서 도살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서 도태되는 수평아리는 한 해에만 70억마리로 추산된다. 수평아리 도태는 △분쇄기 도살 △이산화탄소 등을 통한 질식 △포대자루에 담아 압사시키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포대자루 압사는 적절한 도살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주로 이뤄진다.

동물보호법은 포유류와 조류, 어류 등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 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에 적용된다. 동물보호법상 동물 학대는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다. 동물보호법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동물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되어선 안 된다. 도살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공포·스트레스를 주어서도 안 된다.

축산물위생관리법과 가축전염예방법에 따라 동물을 도살할 경우 가스법·전살법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을 준수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 동물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로 넘어가야 한다.

일례로 2019년 7월 22일 개정된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 역시 동물보호법 제10조에 적시된 방법으로 살처분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수평아리 분쇄 도살은 동물보호법 등을 전면 위반하고 있음에도 관행이라는 이유로 용인되는 실정이다.

독일·프랑스·스위스, 수평아리 분쇄 종식…통계조차 없는 한국

2021년 독일 연방하원은 수평아리 분쇄 도살을 금지하는 동물복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올해 독일에선 수평아리의 도살이 전면 금지되고 오는 2024년에는 수평아리 부화를 막을 계획이다.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도 분쇄 도살을 엄격히 금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수평아리들이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살처분되는지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수평아리 도살 실태조사가 전무한 데 대해 “통계청과 조사 항목을 논의하지만, 아직 현안이 없어 얘기가 나온 적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행 축산의 도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단, 행위 자체를 법적으로 금지하기 위해선 명시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부터 가스 도살을 고려해 부화장을 설계·건축해야 하는데 옛날에 지어져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컨베이어 벨트 중간 지점에 가스 분사기를 설치하는 등 자체적 노력이 있긴 하나 화제 위험과 비용 문제로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라며 “증축하거나 새로 부화장을 짓는 경우 업계에서도 (가스 설비를) 갖출 의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물복지축산 인증제도 기준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동물복지 축산품 수요와 소비로 관련 업계의 도살 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취지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전국 부화장(병아리 생산 장소)은 9개뿐이다. 영국도 전국에 3~4개뿐”이라며 “동물복지축산 인증 제도 기준 확대만으로는 수평아리 분쇄 도살을 막을 수 없다. 외국의 동물복지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부화장은 경기(3), 충북(1), 충남(1), 경북(3), 경남(1)으로 올해 6월 기준 9개다.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는 “동물복지에 최대한 맞추고 싶지만, 수평아리가 계속 생산돼 한계가 있다”며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으로 닭을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침출수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며 환경·비용 문제를 고려해 분쇄 도살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협회 측은 국내 부화장도 인도적 도살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장비 등이 상용화가 안 되는 상태라며 이를 위한 정부 지원은 전무하다고 토로했다.

독일, 수평아리 부화 막아 도살 원천 차단…한국은 ‘답보’

정부 차원에서 수평아리 인도적 도살을 위한 대책 마련과 기술개발 지원은 요원한 상태다. 일찌감치 수평아리 도태 금지를 공포한 독일 정부는 부화 전 단계에서 성별을 감별할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해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반면 농림식품부는 기술개발 연구과제를 단 한 건도 진행하지 않았다.

성 감별 기술로 수평아리 도살을 막는 셀레그트사 (사진=SELEGGT 홈페이지)
독일 정부 지원을 받은 라이프치히대 연구진은 어미 닭이 달걀을 품은 지 8~9일 차에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론설페이트’의 농도가 뚜렷한 변화를 보이는 점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 여성호르몬이 닿으면 색이 변하는 시약을 개발했고, 독일 달걀 생산업체 ‘셀레그트’(Seleggt)사는 이 기술을 2018년 11월부터 상용화했다.

셀레그트사는 9일 된 달걀에 레이저로 지름 0.2㎜ 구멍을 뚫어 요막액 한 방울을 추출한 뒤 시약과 섞어 성별을 감별한다. 셀레그트사는 이 같은 방법으로 한 시간 동안 3000개 달걀의 성별을 감별한다.

이렇게 선별된 달걀은 시중에 ‘레스페그트’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존중받는 달걀이라는 뜻이다. 레스페그트 달걀은 일반 달걀보다 개당 1~2센트(한화 기준 10~20원) 정도 비싼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프랑스 대형 유통업체 ‘까르푸’는 독일 기업과 협업해 △라만분광법 △초분광측정 기술 상용화를 시도 중이다. 단 두 국가 모두 수평아리의 가스 질식사는 허용하고 있다.

윤미향 의원은 “부화장 수평아리 폐기 문제를 공론화하기 힘들었던 것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독일에서 달걀 성별 감별기술 개발을 성공한 만큼 우리 정부도 기술개발 지원을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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