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커式' 자이언트스텝은 없다…비둘기 본능 내비친 파월(재종합)

22년 만에 50bp 금리 인상한 연준
"앞으로 두어차례 더 50bp 올릴 것"
'대차대조표 축소' 6월부터 QT 돌입
다만 75bp 금리 인상 선 그은 파월
뉴욕증시 환호…나스닥 지수 3.2%↑
  • 등록 2022-05-05 오전 8:33:00

    수정 2022-05-05 오전 8:53:37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역대급’ 인플레이션과 마주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긴축 행보를 본격화했다. 무려 22년 만에 처음 기준금리를 50bp(1bp=0.01%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아울러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양적긴축(QT)까지 예년보다 빠른 속도로 실시하기로 했다.

다만 시장의 이목은 다른 곳에 쏠렸다. 누구나 예상했던 50bp 인상 ‘빅스텝’을 뛰어넘는 긴축을 시사할지 여부였는데, 제롬 파월 의장은 75bp 인상 가능성을 두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전 의장과 같은 극단적인 긴축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이 예상보다 비둘기파 면모를 보이자, 금융시장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4일(현지시간)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사진=AFP 제공)


22년 만에 50bp 인상한 미 연준

연준은 3~4일(현지시간) 이틀간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금리를 0.75~1.00%로 50bp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한 번에 50bp 올린 것은 2000년 5월 이후 22년 만이다. 이른바 ‘닷컴 버블’을 잡고자 실시했던 긴축에 버금가는 조치인 셈이다.

이는 월가가 당초 예상했던 그대로다.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 국면이 1970~80년대 오일쇼크 당시 최악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만큼 빅스텝 전망이 많았다.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6.6% 상승했다. 1982년 1월(6.9%) 이후 40년2개월 만의 최고치다. PCE 물가는 연준이 통화정책을 할 때 참고하는 지표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 폭(전년 동월 대비)은 8.5%에 달했다.

연준은 또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QT를 6월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재투자하지 않는 대신 소멸시키는 방식의 롤오프를 통해 대차대조표상 자산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6월 이후 석달간 월별 상한선은 국채와 MBS가 각각 300억달러, 175억달러다. 총 월 475달러의 자산에 다시 투자하지 않고 시장에 흘려보내겠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매달 각각 600억달러, 350억달러씩 총 950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2017~2019년 QT 때는 2년 넘는 기간 동안 8000억달러 가량 줄였다는 점에서, 이번 돈줄 조이기 속도는 훨씬 빠르다는 평가다. 당시 월 상한선은 최대 500억달러였다.

연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연준 대차대조표 규모는 8조9392억달러에 달한다. 연준이 팬데믹 이후 돈을 역대급 풀면서 불어난 결과다. 단연 역대 최대다.

연준은 통화정책 성명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 위험에 매우 높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로 공급망 사태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심각한 경제적인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극도로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파월 “75bp 인상 적극 검토 안해”

파월 의장은 성명서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자마자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다”며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상품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그러면서 추가적인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추후 두어차례 회의(the next couple of meetings)에서 50bp 추가 인상을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게 FOMC의 대체적인 생각”이라며 “우리는 금리를 보다 정상적인 수준으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길을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6월 14~15일 △7월 26~27일 예정된 회의 때는 50bp를 올릴 것이라는 의미다. 그의 언급은 상황에 따라 △9월 20~21일 △11월 1~2일 △12월 13~14일 회의 때도 큰 폭의 긴축이 있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파월 의장은 그러나 75bp를 올리는 ‘자이언트스텝’ 질문이 나오자 “FOMC는 75bp 인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기다렸다는듯 말했다. 뉴욕 증시는 파월 의장이 75bp 인상 가능성을 내비칠지 여부에 이목이 쏠렸는데, 이를 비교적 명확하게 해소한 것이다. 시장 예상보다 비둘기파 기조로 기자회견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파월 의장은 “미국은 탄력적인 노동시장을 갖고 있다”며 “현재 미국 경제는 강하고 긴축 정책을 다루기 좋은 위치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연착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경기 하강에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환거래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선임시장분석가는 “당장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한 번에 75bp 이상 금리를 올리는) 볼커식(式)금리 인상 선택지는 제거할 수 있다는 파월 의장의 자신감이 부각했다”며 “월가는 여전히 연준이 연착륙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웰스파고는 “파월 의장이 75bp 인상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명확하게 보냈다”며 “이는 최근 들어 시장에 매파 신호를 보내지 않은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볼커式 선택지 사라져…시장 안도

이에 뉴욕 증시는 3% 이상 폭등하며 안도 랠리를 펼쳤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2.81% 상승했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2.99% 올랐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3.19% 뛰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급등하면서 1개당 4만달러 목전까지 갔다.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2.901%까지 떨어지면서 투자 심리를 떠받쳤다. 보케 캐피털의 킴 포레스트 설립자는 “(파월 의장의 언급은) 시장에 있던 일부 공포감을 떨쳐내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일단 이같은 기류가 오는 11일까지는 갈 것으로 보고 있다. 4월 CPI가 나와서다. 만에 하나 정점에서 다소 꺾이는 수치가 나올 경우 위험 선호 심리는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 월가 금융사의 채권 어드바이저는 “파월 의장의 ‘연착륙’ 발언과 달리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걸로 나온다면 시장이 (안도 랠리가 아니라) 다시 과민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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