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요와 공급 부진은 우리나라에도 치명적이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 경계감을 높이는 데다 연초부터 부각된 외국인의 ‘이머징’ 매도세를 잠재우기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도주가 부재한 박스권 증시에서 빠른 순환매 장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권고가 따른다.
|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에서 외국인은 지난 18일까지 9거래일 연속 ‘팔자’를 이어가며 이달에만 3조1950억원을 순매도했다. 올해 들어서 외국인이 팔아치운 금액만 8조9760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기관은 7조8100억원을 순매도, 개인은 나홀로 16조3280억원을 사들였다.
중국 봉쇄 리스크가 일부 줄어든 이날 코스피에서 외국인은 10거래일 만에 순매수 전환했다. 간밤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2%가까이 반등, 중국 상하이시 조업 재개와 확산세 둔화 조짐 등 영향으로 해석됐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까지 글로벌 반도체 업종 부진에 중국 대도시 봉쇄 조치 부담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일부 우려 해소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추세적 반등세를 이어갈지 여부는 안갯속이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중국 진출기업 및 공급망 점검회의’에서 주원석 주상하이총영사관 상무관은 “상하이 항만·공항의 물류 기능이 상당히 약화된 상황”이라며 “최근 상하이시가 반도체·자동차 등 중점 업종의 조업 재개를 추진하고 있으나, 방역과 물류 상황을 고려시 본격적인 생산 재개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외인 ‘이머징 매도’…“中악재까지 경제·기업 타격”
외국인의 매도세는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들이 이머징 증시에 대해 매도 포지션을 구축한 데 따른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경기 둔화 시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은 이머징 국가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코로나19 확산세도 매도세에 불을 지폈다는 평이다. IBK투자증권 투자분석부 한 연구원은 “중국의 부분 락다운은 이머징 성장률 악화 요소”라며 “금리 인상기에 이 같은 매도 포지션은 외국인 입장에서 큰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중국 락다운이 장기화되면 외국인이 단기간에 이머징 증시에 진입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외국인 입장에선 중국 경제 악화 헤지 차원에서라도 이머징 매도 포지션을 유지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기업들에도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상하이 인근 장쑤성에는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LG에너지솔루션(373220), 포스코(005490) 등이, 저장성에는 LG전자(066570) 등이 진출해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실물경제 부진과 공급난 우려는 국내 경제와 기업들에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반도체와 테크 산업을 주로 상하이 외곽에 있어 봉쇄 피해가 심각하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중국 공급난은 자동차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공급보다는 중국 수요 부진 영향이 더 클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 성장률이 상향 조정되기 위한 조건에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 18일 중국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1분기 국내총생산(GDP) 전년 대비 성장률은 4.8%로, 당국 목표치(5.5%)엔 크게 못미쳤지만, 시장 우려(예상치)를 상회했다. 다만 문제는 2분기다. 생산·투자 지표는 양호했지만 락다운에 따라 지난 3월부터 소비 부진이 두드러졌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경제분석 연구원은 “중국 경제 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려면 △확진자수 증가세 둔화와 제로코로나 정책 유연성 제고 △부동산 거래위축을 해소할 정책 변화 △예상치 이상의 재정지원 등 조건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증시는 1분기 실적시즌을 맞은 가운데 주요 기업 발표 이전까지 순환매장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증시 이익 모멘텀이 부재하면, 소수의 주도주보다 개별 종목 장세가 연출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순매도에 대형주 중심으로 지수 상단이 제한됐고, 업황을 떠나 수급이 비어있거나 밸류에이션이 낮은 종목들로 빠른 순환매가 일어나고 있다”며 “개별 종목의 1분기 이익 전망 변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