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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시작한 김태동(74)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오후 7시에야 끝났다. 5시간 가량 부동산 문제에 대한 매서운 죽비소리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한 노(老) 경제학자가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울분, 걱정, 안타까움을 토로한 자리였다. 경제 전반을 다루려고 했던 당초 인터뷰 질문지를 덮었다. “사람의 뼈처럼 한국경제 골격이 되는 부동산부터 챙기라”는 김 교수의 당부 때문이다.
“김수현 수석에게 부동산 정책 맡긴 것 잘못”
김 교수는 민주·진보진영의 대표적인 경제 책사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창립 멤버,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정책기획수석비서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을 역임하며 정부 안팎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최근에는 이재명 대선캠프의 정책자문그룹 ‘세상을 바꾸는 정책 2022’(세바정2022) 정책 고문을 맡았다.
그가 진단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원인은 간단 명료했다. 한 마디로, 청와대 인사 실패가 그 단초라는 것. 문재인 정부 초대 사회수석에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자였던 김수현 전 수석을 재등판시킨 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김수현 수석에게 부동산 정책을 맡긴 게 잘못”이라고 전제한 뒤 “문재인 정부 초기에 김 수석이 부동산 폭락을 우려해 미온적 대책을 펼친 점, 다주택자를 위한 임대사업자 특혜를 유지한 점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공급 정책도 집값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3기 신도시 등에 신규 13만 2000가구를 공급하는 8.4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작년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0억312만원을 기록, 처음으로 10억원을 넘었다. 올 들어 6월까지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가격은 16.43% 뛰었다. 김 교수는 “몇 년 뒤의 신규 주택 공급만으로 집값을 잡을 순 없다”고 단언했다.
공급 정책과 수요 정책을 전면 수정하라는 게 김 교수가 내놓은 해법이다. “노태우 정부 때처럼 200만호 건설 등으로 공급을 대폭 확대하면서, 토지 공개념 등 수요억제 정책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는 것. 그는 “지금 정부는 정권 초기 수요정책이 잘못돼서 공급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수요와 공급은 우리 몸의 오장육부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며 “부동산을 안정화하려면 일관된 수요·공급 정책 기조로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기대심리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文정부 임대사업자 제도는 집값 부양책”
우선 김 교수는 단기적인 공급 대책으로 민간 주택 임대사업자 특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단기 공급 대책은 신규주택이 아니라 기존 주택을 통한 공급”이라며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공급하도록 하는 게 최선의 단기 공급대책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주택 임대사업자 특혜를 주면서 주택 공급을 억제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시설에 민간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적극 권유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지방세·임대소득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면제 혜택을 받고 8년 이상 전세 등으로 임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제도 활성화에도 전셋값·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장기적인 공급대책으로는 발표한 대책을 이어가되, 지역균형발전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중앙부처가 세종으로 가도 상당 수 공무원들이 서울에 집을 두고 출퇴근하고 있다”며 “행정부, 공공기관 건물만 지방으로 옮긴다고 서울의 집값이 안정되지 않는다. 국회·청와대도 이전하고, 자녀 교육을 고려한 지역균형발전 가속화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수요 정책은 보유세 강화라는 일관성을 가지고 갈 것을 주문했다. 그는 “종부세를 완화할수록 집값 수익에 대한 미래 기대를 높여주기 때문에 집값 잡기가 힘들다”며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보유세가 높은 곳이 집값이 많이 안 오르는 만큼 우리나라 보유세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윤영훈 초빙연구위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산세·양도세는 4.05%로 OECD 평균(2.01%)보다 높았지만,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8개국 평균(0.54%)보다 낮았다.
김 교수는 이재명 지사의 정책 고문을 맡은 이유도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금 더불어민주당 어떤 대선주자도 제대로 된 부동산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이 지사는 단칸방에서 살며 공장에서 일한 경험 등이 있으니까 평범한 청년, 무주택자들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차기 정부가 집값을 잡을 것이란 신뢰를 주는 게 우선 중요하다”며 “청년, 무주택자 입장에서 부동산 정책을 추진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