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 74. 집, 보트…이젠 어디로

  • 등록 2018-08-14 오전 6:00:00

    수정 2018-08-14 오전 6:00:00

런던 운하 보트하우스(출처=CRT)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최근 영국 런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 스폿으로 떠오르고 있는 런던 북부 이즐링턴에 가보면 운하를 따라 조그만 보트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날 때 보트를 타고 유유자적 즐기기 위한 레저용의 보트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실제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보트가 이들에게는 집인 셈이죠.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런던 땅 위에 지어진 집값을 감내할 수 없어 거주지를 운하 위의 보트로 옮기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면서 영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가처분소득의 눈에 띄는 증가가 없는 것도 사람들이 집 구매 등 큰돈이 나가는 경제적 결정보다는 돈이 덜 들면서 개인 공간을 가지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보트로 눈길을 돌리게 하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런던 수로를 관리하는 자선단체 ‘운하&강 재단’(CRT)가 보트 정박료를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보트하우스 주거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습니다.

올 초 런던 지역에 하우스보트를 소유한 사람들 가운데 약 250명이 CRT로부터 보트 정박료 최대 89% 인상을 공지한 통지문을 받았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같은 지역 집 소유자들이 내는 지방세 상승분 보다 더 많은 인상분의 정박료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즐링턴 운하 보트에서 사는 프리랜서 영화 제작자인 레이첼 브라운(36)은 “나는 소득이 적은 싱글맘인데 정박료를 감당하지 못해 거주지를 옮겨야하면 아이의 생활도 불안해진다”고 우려했습니다. 브라운이 연간 내야 하는 정박료는 3년 전 9000파운드(약 1350만원)에서 향후 1만2521파운드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정박료 인상은 런던 곳곳에 형성돼 있는 보트하우스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보트하우스에서 14년간 거주해온 조세프 칼드웰(47)은 “내가 살던 운하는 보트하우스 거주인들이 활발한 커뮤니티를 형성한 곳인데 정박료가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며 “이곳은 부자들이 가끔 쓰는 레저용 보트로 채워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칼드웰은 정박료 인상으로 1년에 1만2000파운드를 내야 합니다. 반면 근처 집 소유자들이 내는 지방세는 1271~2382파운드 정도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영국 전체로 보면 약 1만5000여명이 보트하우스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런던에서는 집값이 2000년대부터 빠르게 치솟고 있어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보트하우스는 런던에서 살 수 있는 대안으로 각광 받았습니다.

특히 가진 자금이 별로 없는 사회 초년생들이나 저소득층에게 집값이 비싼 런던에서 보트하우스가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정박료에서부터, 보험, 보트 운항 관련 각종 자격증, 연료 및 유지비 등 보트하우스 운영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런던에서 일반적인 집을 소유했을 때보다는 비용이 덜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브라운은 “아이를 가졌을 때 보트하우스로 옮겼는데 그것은 내가 런던에서 가족과 친구들 가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8년 동안 런던 운하와 강 근처에 생긴 보트 수는 두 배로 늘었습니다. 보트하우스 수가 급격히 늘자 CRT는 통제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CRT 대변인은 “운하 관리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공정가치를 반영한 시장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 런던 중심가 보트 정박료 인상과 관련한 제안서를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아직 논의 중인 사항이며, 시장 가격 감당이 어려운 보트하우스 거주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 등 여러 옵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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