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는 종부세 폭탄, 뒤에는 거래 절벽…다주택자 '진퇴양난'

보유세 최대 37% 인상이라지만
종부세만 따져보면 더 오르기도
늘어난 세금 부담에 매수자 급감
매물 안 팔리자 절세법 문의 급증
  • 등록 2018-06-25 오전 5:20:00

    수정 2018-06-25 오후 2:20:55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보유세 개편안이 나온 이후 사무실에 전화가 빗발칩니다. 당장 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세금 인상에 따른 절세 방법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시중은행 소속 세무사)

지난 22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위원회가 공개한 보유세 개편안 시나리오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강화 쪽으로 맞춰지면서 다주택자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공개된 개편안으로 볼 때 최대 37%까지 보유세(종부세+재산세) 부담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가율·세율 모두 인상…‘3안’이 유력

재정개혁위원회가 제시한 보유세 개편안에는 크게 네 가지 시나리오가 담겼다. 종부세의 과표를 정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공정가율)을 단계적으로 100%까지 인상하는 1안과 과표에 따라 부과하는 세율을 0.5~2%(주택 기준)에서 0.5~2.5%로 인상하는 2안, 공정가율과 세율을 모두 인상하는 3안, 1주택자는 공정가율만 올리고 다주택자는 세율까지 인상하는 4안이다. 강병구 재정특위 위원장 역시 “공평과세의 측면에서 적절한 기준에 따라 공정가율과 세율 인상을 적절한 수준에서 결합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3안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4안에 대해서는 ‘똘똘한 한 채’ 선호현상을 가속화한다는 우려를 나타내 사실상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당장 늘어나는 세 부담은 둘째치고라도 주택 보유에 대한 부담이 커지며 주택시장이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고가주택 소유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이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VIP컨설팅팀 수석매니저는 “보유세 인상이 종부세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1주택자나 저가주택 소유자보다는 종부세를 낼 정도의 다주택자·고가주택 소유자에게만 증세 부담을 주겠다는 것”이라며 “당장 종부세 증가가 주택을 매도할 만한 타격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주택 소유에 대한 부담은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 종부세는 다주택자는 6억원 이상, 1주택자는 9억원 이상의 주택을 소유해야만 부과되는데,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2016년 기준 주택 소유자 1331만명 중 2.1%인 27만 4000명에 달한다. 이 중 1주택자가 6만 9000명이고, 20만 5000명이 다주택자이다. 재정개혁위원회가 재산세와 종부세 중 종부세 개편을 먼저 들고 나온 것은 다주택자·고가주택 소유자에 대한 ‘핀셋 규제’를 통해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되 부동산 소유를 통한 부의 축적을 막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데일리가 원종훈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세무팀장에 의뢰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공정가율을 5%포인트 인상하고 세율(0~0.5%포인트) 역시 상승한다고 할 때 서울 반포동 ‘아크로 리버파크’ 전용면적 84.94㎡(공시가격 13억 5200만원)와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전용 170.88㎡(공시가격 23억 400만원)를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자는 종부세가 1689만원에서 2546만원으로 늘어나 보유세액(2898만→3755만원)이 29.5% 증가하게 된다.

당장 세금 인상에 직면한 종부세 대상자들은 손익 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에 각각 주택 2채를 가지고 있는 주부 은모(49)씨는 “가장 보수적으로 부담할 세금을 계산해보더라도 492만원 정도 세금이 늘어난다”며 “갈수록 세금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절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 중”이리고 말했다.

종부세 이어…재산세 인상 우려도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증여 등을 통한 자산의 분산과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통해 세금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봤다. 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이뤄진 서울 주택거래량 12만 1853건 중 증여는 1만 1067건으로 전체의 9%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1년간 전체 증여건수 1만 4860건에 육박한다.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보는 상황에서 제3자에게 집을 미리 팔기보다는 자녀 등 가족에게 소유권을 넘겨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피하겠다는 움직임이 반영된 셈이다. 주택을 8년 이상 임대하는 준공공임대사업자는 양도세 중과 배제 및 종부세 합산배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절세가 가능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종부세 부담이 크지 않은 꼬마빌딩이나 상가 등으로 관심을 돌리는 이가 많아질 것”이라며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이나 해외부동산 투자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산가들이 아닌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서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 등을 통해 무리하게 집을 구매한 이들이다. 특히 종부세 납세자가 많이 분포한 강남권 주택시장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과 전셋값 약세 등 악재가 몰려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된서리를 맞게 됐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집값이 너무 올라 가격 저항선이 생긴 데다 보유세 증가까지 겹치면서 관망세가 더 짙어질 것”이라며 “매물은 늘어나는데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가격 하락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는 종부세 인상만 가시화됐지만 재산세,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부담 역시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역시 현실화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최병호 재정개혁특위 조세소위원장(부산대 교수)은 22일 보유세 개편 방향을 발표하면서 “효율성과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취득, 보유 및 양도 등 각 단계를 연계한 세제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 :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인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의 비율. 종부세는 ‘[(공시가격-9억원)×공정시장가액비율(80%)]×세율’로 정한다. 다주택자는 공시가격에서 9억원이 아닌 6억원만 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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