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업체는 지난 2월 경기지역에서 오피스텔 1개동을 통째로 보유한 ‘큰 손’을 고객으로 유치하려 갖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계약 직전에 건물주가 임대 관리비를 더 낼 테니 자신의 월세 수입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임대소득이 노출돼 세금을 물게 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주문대로라면 A업체는 건물주에게 받은 관리 수수료 수입을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는 ‘탈세’를 저질러야 했다. 결국 계약은 수포로 돌아갔다.
A업체 관계자는 “집주인의 소득 노출에 대한 거부감 탓에 주택 유치에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이대로라면 기껏 새로 열린 시장이 금세 고사할 수도 있다”고 푸념했다.
정부가 민간 전·월세시장을 선진화하겠다며 도입한 ‘기업형 주택 임대관리업’이 제도 시행 초기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전·월세 임대소득 과세에 따른 시장 음성화와 미비한 제도 때문이다.
세금 안 내려는 집주인, 임대관리업체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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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초 기준 정부에 등록한 주택 임대 관리업체 7개사가 관리하고 있는 민간 임대주택은 총 2974실이다. 이 중 제도 도입 이후 신규 계약을 맺은 곳은 830건(27.9%)에 불과하고, 나머지 23개 업체는 아예 영업 실적이 없는 상황이다.
합법적인 업체는 불법 업체에 치이고 있다. 서울 강남권에서 손꼽히는 주택 임대 관리업체인 B사는 지난달 알짜 고객을 놓쳤다. 이 회사는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 미분양 물량 80여실을 보유한 한 시행사와 주택 위탁 관리를 위한 협상을 해 왔다. 그러던 중 임대소득 노출 없이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나선 미등록 임대 관리업체에 고객을 뺏긴 것이다.
현행 법상 주택을 100채(자기관리형) 또는 300채(위탁관리형) 이상 관리하는 업체는 해당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중개업소를 중심으로 과거부터 임대 관리업을 했던 상당수 토착 업자들은 소득 신고도 하지 않고 미등록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임대소득을 감추려면 미등록 업체를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 이처럼 탈세 사업자끼리 짝짜꿍하다보니 합법적인 업체만 졸지에 왕따가 된 꼴이다. B회사 대표는 “정부 말을 순순히 따른 업체가 불법 업체들보다 손해를 보게 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업계 “임대관리 시장 활성화 위해 과세 보완해야”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주택 임대 관리업의 안전성을 높이겠다며 마련한 각종 장치가 되레 규제가 됐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현행 규정상 자기관리형 임대 관리업을 하려면 대한주택보증의 ‘임대관리보증’ 상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업체가 집주인에게 월세를 납입하지 못하거나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다. 하지만 보증료가 업체가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고, 세입자의 보증금을 집주인 아닌 공공기관이 관리하도록 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을 사고 있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이 보증 상품은 제도 시행 4개월째인 현재까지 가입 실적이 단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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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설명
자기관리형=임대 관리업체가 집주인에게 매달 정해진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 업체가 공실이나 월세 미납 등 사업 리스크를 떠안는 대신 관리·운영만 잘하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위탁관리형=임대 관리업체가 매달 들어오는 임대료 중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형태. 임대 리스크를 집주인이 지므로 업체는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