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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했다. 문화다양성 협약 당사국으로서 국제협약이 요구하는 권리와 의무를 반영한 실행방안 마련을 위해 제정됐다. 이에 정부는 문화다양성 증진과 보호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 소속 문화다양성위원회 설치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문화다양성과 공존에 대한 의식이 선진국보다 여전히 낮은 현실 탓이기도 하다. 지난 2월 불거진 ‘아프리카예술단의 노예계약 논란’은 비단 이민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화공존 의식은 우리 사회 내의 약자인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 문제와도 깊이 관련돼 있다. 문화계 속 현실은 어떨까.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못한 문화계 그늘을 들여다본다. 시작은 공연예술인들의 육아문제다.
△‘19금’ 공연장 아이 데려가고 휴대폰게임 권해
연극배우 김정인(가명·43)은 2006년을 떠올리면 아직도 먹먹하다. 아이에 미안해서다. 태어난 지 100일이 갓 넘은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분유를 잔뜩 먹여 분장실에 재운 뒤 무대에 섰다. 어린이집은 ‘그림의 떡’이다. 공연이 시작하는 오후 8시 전에 대부분 문을 닫는 어린이집에서 도움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연이 끝나는 시간이 오후 10시경이라 아이를 2~3곳에 시간대별로 옮겨 맡긴 적도 많다”고 했다.
△100명 중 92명 “아이 생기면 무대 떠날 것”
오후 10시가 넘어야 공연이 끝나고, 남들이 쉬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더 많이 무대에 서야 하는 공연(연극·뮤지컬·무용·음악)예술인. 여기서 육아문제가 한 번 더 발목을 잡는다. 활동시간의 특수성 때문에 기존 보육시설 이용 등 육아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월수입이 1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예술인이 10명에 7명 수준. 경제상황이 어려워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더라도 육아도우미를 쓰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이 때문인 경력 단절이 심각한 문제다.
△맞춤형 보육시설 절실…“관객의 아이도 서비스해야”
여성공연예술인은 직장 인근 맞춤형 보육시설 설치를 가장 많이 바랐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공연장이 많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 혜화동 로터리 아남아파트 상가 내에 반디돌봄센터를 열어 이달 시범운행 중이다.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1시에서 밤 11시까지 운영되는 공연예술인을 위한 맞춤형 자녀돌봄서비스다. 이용요금은 시간당 500원으로 저렴하다. 이를 통해 무대에서도 육아문제를 고민하는 공연예술인들의 숨통은 틔워줬다는 평가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공연예술인들을 위한 돌봄센터는 전국에 대학로 단 한 곳뿐. 서울·경기권에 살지 않는 예술인들은 현실적으로 이용이 어렵다. 이 시설을 지역별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공연예술인들의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공연계 발전을 위해서는 예술인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민애 동작연극협회 회장은 “공연을 가장 많이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30~40대 여성들”이라며 “이들 대부분이 아이를 맡겨 둘 곳이 없어 관람을 포기하는데 공연시간 동안만이라도 아이를 돌봄센터 같은 곳에 맡겨둘 수 있다면 공연시장도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