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가 내야 할 1년치 임대소득세는 최고 2526만원(지방세 포함)이다. 다른 소득이 없고, 지난해 2억250만원(실당 평균 월세 67만5000원)의 임대소득을 올렸다고 가정한 경우다.
하지만 정씨에게 납세는 남의 얘기다. 소득이 노출되지 않아서다. 정씨 원룸의 세입자는 주로 단기로 계약하는 학생들이다. 월세 보증금이 1000만원 이하로 소액이다.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는 집도 적지 않다. 이러다보니 지난해 전입신고만 하고 확정일자를 신청한 세입자가 아예 없었다. 또 월급쟁이가 아니어서 월세 소득공제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결국 집주인 입장에서는 소득이 드러나 ‘뒷통수’를 맞을 일이 없다는 얘기다. 노량진1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전셋집을 구한 직장인 등을 빼면 이 일대 원룸을 계약한 학생들은 대부분 전입신고만 하고 확정일자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확정일자 신고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가 파악한 전국의 전·월세 거래 현황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이데일리>가 통계청 인구센서스와 국토교통부의 확정일자 신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확정일자를 받은 전국의 전·월셋집은 총 137만3172채로 연간 실거래량 추정치(210만4876채)의 65.2%에 불과했다. 지난해 이뤄진 전체 임대차 거래 3건 중 1건 이상(73만1704채)이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오는 5월로 예정된 임대소득세 과세다. 정부는 지난해 확정일자 자료를 가려 지금껏 세금을 내지 않았던 주택 임대사업자들에게 세금을 물릴 예정이다. 하지만 보증금이 적은 월셋집 거주자의 경우 확정일자를 신청하지 않거나 소득공제 대상도 아니어서 과세에 큰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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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왜 확정일자를 받지 않았을까. 우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전입신고만으로 소액의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임대차 보호법상 ‘최우선 변제 제도’도 한몫한다. 가령, 서울에서 은행 근저당권이 2010년 7월에서 지난해 말 사이 첫 설정된 주택은 집이 경매에 부쳐져도 보증금 7500만원 이하라면 2500만원까지 우선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보증금이 2500만원을 밑돌면 굳이 임대차 계약서에 확정일자 도장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T공인 관계자는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확정일자를 받으라고 권유하긴 하지만 실제로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소액 임차인의 최우선 변제액은 올해 서울 기준으로 3200만원까지 상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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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일자의 허술한 그물망을 빠져나간 사례는 이 뿐 아니다. 지방에 흔한 ‘연세(年貰)’가 그 중 하나다. 연세란 보증금 소액과 1년치 월세를 집주인에게 미리 지불하는 보증부 사글세다. 서울·수도권에서는 생소하지만 지방에서는 흔하다. 제주도는 임대차 거래 대부분이 연세로 이뤄지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제주시 이도2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세입자가 걸어두는 보증금이 적게는 30만~50만원인 경우도 적지 않다”며 “보증금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전입신고 신청 건수 대비 확정일자 부여분이 절반도 채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 청사가 이전한 세종시에서도 연세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조치원읍 중심가와 대학가 인근에 우후죽순 들어선 원룸 대다수는 연세로 거래된다. 조치원읍 D공인 관계자는 “소형 주택일수록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한꺼번에 받는 연세 거래가 많다”며 “월세를 몰아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주로 연세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세종시는 지난해 도시형 생활주택 2167채가 인허가를 받았다. 전년 대비 71% 늘어났다. 하지만 통계 미비로 전체 월세 가구 중 연세 비중은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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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세입자가 집주인 목에 방울을 달아라?
꼭 월세에만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서울시 주택정책개발센터 관계자는 “권리관계가 복잡하거나 고가 전세는 확정일자 대신 집주인과 합의 아래 법원의 임차권 등기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전세 보증금이 6억원을 넘어도 집주인이 믿을 만하다는 이유로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임대차시장의 정보가 워낙 부족하다보니 그게 특별한 건지 일반적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확정일자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과세의 또다른 수단으로 활용하는 월세 소득공제 제도도 효과는 미지수다. 그 수혜 대상에 저소득층, 영세 자영업자 등 월셋집에 주로 사는 계층이 대거 빠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방안들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세입자 보호·지원 장치인 확정일자와 소득공제를 집주인의 세금을 노출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해 갈등을 양산하고 임대차시장 음성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를 한다는 기본 방침 아래 임대소득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며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것이 더 유리하도록 세 부담을 크게 낮춰주는 등 다주택자의 사업자 등록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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