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과 5호선 답십리역 사이에 들어선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전농SK아파트는 총 2678가구 규모의 초대형 단지다. 이 아파트 59㎡(전용면적 )형은 현재 매매가격이 2억5500만원, 전셋값이 2억500만원 선이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무려 80.4%에 달하는 셈이다. 전셋값에다 5000만원만 보태면 아예 아파트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달 이후 매매 거래는 단 1건에 그쳤다.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집값이 오를 기미가 없는데다 취득세 부담도 만만찮은 상황이다보니 전세보증금에다 돈을 조금 더 보태 전세 탈출을 하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집값이 전셋값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전세로 눌러앉으려는 수요가 넘쳐나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상반기 취득세 감면 혜택이 끝난 이후 거래 절벽과 전세난이 겹치면서 잘나가던 서울의 소형아파트마저 팔리지 않고 있다. 또 전셋값 급등으로 지방과 소규모 주상복합단지에 국한됐던 고(高)전세가율 아파트가 소형아파트를 중심으로 서울의 대단지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들 아파트는 대부분 전세가율이 80%에 육박하지만 매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세가율이 60~70%를 넘으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화된다는 공식도 전혀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전세가율이 70~80%에 육박하는 단지도 적지 않다. 소형 아파트 전세가율이 80% 선인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전농SK아파트 전경. <사진제공:부동산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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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시내 300가구 이상 단지 중 전세가율이 80%가 넘는 아파트는 전농SK아파트를 포함해 모두 7곳이다.
전세가율 80% 이상 아파트는 모두 전용 60㎡ 이하 소형으로 전셋값은 1억7000만~3억1000만원, 매매가는 2억1000만~3억8000만원 수준이다. 전셋값에다 3000만~7000만원만 더하면 아예 집을 살 수 있지만, 지난달 이후 이들 아파트의 매매 거래는 전세(7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건에 불과하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지금과 같은 집값 하락기에는 소형아파트 매입을 원하는 실수요자들조차 전세로 눌러앉아 때를 기다리자는 관망세로 돌아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주 접근성이 좋고 배후 수요가 풍부한 지역의 소형아파트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서초구 서초동 더샵서초아파트(329가구)는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이 불과 100m떨어진 초역세권 단지다.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와 가까운 이 아파트 전용 33㎡형 전셋값은 2억9000만원, 매맷값은 3억3500만원선으로 전세가율이 86.6%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한달 새 전세만 2건 거래됐다. 서초동 슈퍼빌야후공인 관계자는 “전셋값이 집값 수준인데도 전세는 물건이 나오는대로 계약이 성사된다”며 “집값 하락세에다 취득세 부담까지 겹쳐 매매가 완전히 끊긴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로 구로디지털단지 초입에 자리한 구로구 구로동 두산위브아파트(660가구)전용 36.9㎡형 평균 전셋값은 1억7250만원으로 매매 시세(2억1500만원)의 80% 선에 육박한다. 그러나 7월 이후 전세는 4건이나 거래됐지만 매매는 단 한 건에 머물렀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전셋값이 오르고 매매 가격이 내리면서 높기만 했던 내 집 마련의 문턱이 낮아진 셈”이라며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할 경우 연말까지 취득세가 면제되는 만큼 시세보다 싼 급매물 중심으로 내집 마련에 나서 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 ▲서울지역 300가구 이상 단지 중 전세가율 상위 20위 아파트. <자료:부동산114·단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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