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 당 80달러를 돌파한 국제 유가가 조만간 100달러대까지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다. 신용 위기로 취약해진 세계 경제에 고유가 부담까지 겹칠 경우 상당한 악영향이 올 것이란 우려가 많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 이같은 우려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1970년대 식 오일쇼크는 없다고 평가했다.
연료 효율성 증가로 세계 경제의 펀더멘털 자체가 변화한데다, 중국과 산유국 등 신흥 경제대국의 고도 성장도 나타나 얼마든지 유가 100달러 시대를 견딜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유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져도 이에 대처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과도한 금리인상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마트 효과`로 고유가에도 소비자 구매력 저하없다
WSJ은 세계 경제가 유가 100달러 시대를 감내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로 `월마트 효과(Wal-Mart effect)`를 꼽았다.
시중에 값싼 제품이 넘쳐나는 현상을 뜻하는 `월마트 효과`는 저비용 수출국인 중국의 등장으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산 저가품이 범람하면서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세계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은 별로 줄지 않았다.
실제 현재 미국 가계는 가처분 소득의 4% 미만을 소매품 구입에 쓰고 있다. 1980년대에는 이 비율이 6%에 달했다.
연료 효율성 증가도 고유가의 악영향을 상쇄시키고 있다. 대체 연료 및 친환경 제품의 개발로 운송업계의 원유 의존도 역시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브릭스·중동 산유국의 고도 성장도 고무적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을 비롯한 이머징마켓 국가의 고도성장도 세계 경제에 청신호다. 이머징마켓의 고도 성장은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판로 확대로 이어져 고유가 극복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미국 2위 자동차업체 포드의 엘렌 휴즈 크롬윅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이머징 국가들이 자동차를 보유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면서 "미국 자동차업체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열렸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그녀는 "이머징마켓의 구조적 변화가 세계 경제를 유가 변동에 덜 민감하게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독립 에너지 경제학자인 필립 베를레거는 "산유국들이 더 많이 소비하고 투자할 경우 유가 100달러는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경제학자 "고유가 불구 세계 경제 3% 성장 가능"..금리인상 우려도 적어
많은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경제가 둔화되더라도 여전히 3% 이상의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캠브리지 에너지 리서치 어소시에이츠의 대니얼 예르진 회장은 "과거 오일쇼크 때만큼 고유가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그린스펀에게 80달러대의 유가가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린스펀이 "아직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답했다는 것.
고유가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더라도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낮다.
WSJ은 지난 1980년 오일쇼크 당시 FRB가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즉각 금리를 인상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과거 논문을 통해 "오일쇼크가 경제에 미친 악영향은 대부분 FRB가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한 데서 온 것"이라며 "FRB의 금리인상 처방은 잘못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