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꼬리표가 없어 정확한 집계는 힘들지만 대략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곳곳에 그물처럼 뻗어있는 은행 점포 현금자동출입금기(CD/ATM)의 현금 인출액을 살펴보는 것이다. 본지 경제부 금융팀은 은행 중 점포 수가 가장 많은 국민은행(점포 1006개)과 농협(점포 966개)의 지난 8월 한 달간 점포별 CD기 현금 인출액을 분석, ‘대한민국 현금 지도’를 그려 보았다.
국민은행 채널기획부 김창일 과장은 “CD기 설치 위치와 대수 등을 정할 때는 지역의 현금 수요를 면밀하게 시장 분석하기 때문에, 현금인출액이 많은 지역은 상권(商圈)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청계천 효과 본 서울 시청 주변
분석 결과 두 은행의 전국 약 2000개 점포 중 현금 인출액이 가장 많은 지역은 과천 서울경마장과 강원랜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경마장과 강원랜드 점포(농협)의 현금 인출액은 하루 평균 각각 7억9075만원, 7억1658만원에 달했다.
현금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들 도박·경마 지구를 빼고 일반 상권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 시청 주변(7억840만원·농협), 성남 중앙시장(4억5271만원·농협), 서울 남대문시장(4억3779만원·국민은행), 서울대학교(3억6637만원·농협)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특정기업·기관 안에 설치된 CD기(국민은행 기준) 중에서는 주택공사(1억6522만원)의 인출액이 가장 많았고, 대우조선(9519만원), 대우자동차(5345만원), 현대산업개발(5168만원), 광양제철(4431만원), 경찰청(3181만원), 예금보험공사(2805만원), 울진 원자력(1522만원) 등의 순이었다.
◆재래시장 죽고 할인점 뜨고
농협이 전국에 설치한 6200대 CD기의 현금출금액 변동추이로 볼 때, 최근 상권이 활기를 띠고 있는 지역은 서울 광화문 시청 앞 광장 주변과 경기도 평택시 포승공단이었다.
서울시청 앞에 위치한 태평로지점의 경우 하루 평균 인출액이 1년 새 18.3% 늘어나 증가 폭이 1억964만원(5억9876만원?7억840만원)에 달했다. 청계천 복원으로 시청 앞 광장을 찾는 나들이객이 급증한 덕분으로 농협은 분석했다.
반면, 광주시 광산동에 소재한 농협 동광주지점은 현금출금액이 1년 새 40% 급감했다. 이곳에 있던 전남도청이 지난해 10월 전남 무안으로 이전하면서 주변 상권이 죽었기 때문이다.
또 제주경마장과 강원랜드 출금액도 크게 줄었다. 농협 강원랜드출장소 직원은 “올 여름 휴가철엔 작년 여름보다 카지노 이용객이 1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마사회지점 직원도 “경마장에 설치된 CD기 출금액이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현금 인출액이 줄어든 지역엔 재래시장이 많이 포함됐다. 경북 영주시 번개시장(신영주지점·1억6788만원→1억856만원), 대구 남구 봉덕시장(봉덕지점·1억2637만원→7636만원), 강화군 강화풍물시장(강화군지부·1억9900만원→1억7023만원) 등이 인출액 감소 상위 20위 안에 들었다.
반면,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 인근 지역은 현금 인출액이 늘어났다. 서울 강남구 양재하나로클럽(양재물류센터출장소·1억1795만원→1억5791만원), 부산 롯데백화점 서면점(부전동지점·2억6718만원→2억9326만원), 울산 동구 현대백화점 동구점(동울산지점·1억4725만원→1억7227만원) 등의 인출액이 크게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