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안근모기자] 시장에 금리인하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특히 채권시장에서는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시점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이미 그럴 것임을 예고했다고 믿는다. (이 기사는 3월2일 10:00 edaily `마켓플러스`에 게재됐습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생각이 다르다. 3월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할 금융통화위원회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의안을 꾸밀 당국자들은 손을 젓는다.
한 관계자는 "전혀 생각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상황이 당초 예상보다 나빠지긴 했지만,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계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축은 지정학적 불안요인 때문이라는 진단이 깔려 있다.
그는 "성장률이 4%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아래에서도 현재의 금리 수준은 충분히 완화적"이라고까지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소비와 투자의 금리탄력성은 현재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이 추가로 완화되더라도 실물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 방향을 결정할 금통위 분위기도 소극적이다. 한 위원은 "전쟁이 날 지, 난다면 언제 날 지 조차도 아직 불확실하지 않은가"라며 "경제외적 요인으로 인한 불안감인 만큼 요인이 일단 해소된 뒤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소비와 투자는 예상보다 많이 위축됐지만 수출은 여전히 견조한 상황"이라면서 "경기가 급락하고 있다면 효과 여부를 떠나 심리적 처방 차원에서 금리를 내릴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대신 금리 추가인하에 따른 부작용은 매우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질금리가 제로수준이 됨에 따라 이자소득자들의 소비는 더욱 위축될 것이란 점과, 가까스로 잡아놓은 부동산 투기 열풍을 되살릴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한 관계자는 미국 연준의 연구결과를 전하면서 "금리가 일정수준까지 떨어지면, 소비위축 효과가 진작효과를 상쇄해 버린다"고 말했다.
박승 총재가 신년사에서부터 "잠재수준 이하로 성장률이 떨어질 우려가 있으면 신속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던 점을 상기시키자, 관계자는 "연초 위축된 경제심리를 위무(慰撫)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은이 금리인하를 고려하고 있다면, 왜 통안증권 장기물 발행을 늘려 시중 유동성을 흡수했겠는가"고 반문했다.
`금리인하설은 이득을 얻고자 하는 일부 채권 투자기관의 여론 몰아붙이기`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한 관계자는 "일부의 이득을 위해 국민경제의 부작용을 감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럼 한은은 여전히 경제를 낙관하고 있는가. `조심스런 낙관론` 또는 `약화된 낙관론`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현재의 GDP는 잠재능력 수준과 비교해 파(par) 정도"라고 진단했다. 2분기 들어서는 잠재수준 이하로 떨어져 갭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전쟁이후 회복 기대감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12월말이나 1월초 전쟁이 시작돼 단기간내 종결된 뒤, 3분기부터는 본격적으로 되살아날 것이란 당초 시나리오가 다소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경기둔화도 추세적인 하강국면 진입을 예고하기 보다는 미니사이클상의 `dip`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현 상황에 대한 대응은 `재정 조기집행`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유효하기도 하다고 한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설사 상황이 더욱 나빠진다 해도 추경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세계잉여금이 있어 `균형재정 약속`을 파기하는 정치적 부담이 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찜찜한 게 한 가지 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에서 그랬듯이 상황이 좀 더 악화되면 부양으로 선회하려할 수 있다"며 걱정했다.
박승 총재는 지난 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 주재로 열린 경제동향점검회의에서 "재정정책이 확장기조로 전환될 경우에는 금리정책을 다소 긴축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전윤철 부총리는 `정책효과를 상쇄시키겠다는 말인가`라며 발끈했었다.
하지만 `정책조합(policy mix)`이냐 `전원돌격`이냐의 논란은 거시정책 기조가 `탄력대응` 수준을 넘어선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완고한 한은은 지금 미-이라크 정국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달중에는 전쟁 여부 및 전개양상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개전 이전에 경제전망이나 정책방향을 수정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위험하다고 말한다. `필요시 금리인하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이미 밝혔고, 그 의지의 실현 여부는 `전쟁` 양상이 드러난 뒤에 뚜렷해 질 것이지만, 한은은 영 내키지 않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