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도돌이' 안전점검에 골머리…"서류 준비하다 밤샌다"

1년 평균 8.3회 안전점검…최대 31회 받는 곳도
기관별 중복점검, 관행적 문서 요구로 부담 가중
'과태료로 실적 쌓기 하나'…현장 불만 높아져
"기관간 중복점검 조율하고 요구자료 한정해야"
  • 등록 2024-08-23 오전 5:00:00

    수정 2024-08-23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건설 현장이 유사한 안전점검을 반복적으로 받으면서 불필요한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공사 일정까지 차질을 빚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검 기관이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서류를 최소화하고 기관 간 업무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22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건설 현장 115곳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각 현장은 1년간 평균 8.3회의 안전점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2곳은 16회 이상 점검을 받았고 50억원 미만 소규모 공사도 평균 5.4건의 점검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많은 안전점검을 받은 현장은 1년간 점검을 총 31회나 받았다. 발주처로부터 2회, 국토교통부와 산하기관 6회, 고용노동부와 산하기관 18회, 지방자치단체 2회, 경찰청 2회, 소방서 1회 등이다.

이들 기관은 집중점검, 불시점검, 안전점검, 특별점검, 고강도점검 등 비슷한 점검을 시행하고 이에 더해 해빙기, 우기, 혹서기, 동절기 등 ‘주요위험시기’에도 개별적으로 점검을 진행한다.

문제는 각 기관이 점검 때마다 형식상 필요한 서류를 모두 내라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안전점검 시 제출하는 서류는 현장에 따라 10~20종, 많게는 50종에 달하는데 점검 기관 및 목적과 무관하게 모두 비슷해 문서 업무가 불필요하게 과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이번 설문에 참여한 건설 현장 중 71곳은 ‘기관별 안전점검 활동이 지나치게 중복적’이라고 응답했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문서 반복 작성’ 및 ‘점검 목적과 부합하지 않은 형식적 절차’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건설 현장 한 관계자는 “서류에 들어가는 일부 표현과 이름을 조금씩 바꾸는데도 양이 너무 많아 밤을 새워야 할 정도”라며 “수시로 오는 안전점검에 대응하다 보면 오히려 현장으로 나가 안전 관련 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라고 말했다.

아울러 안전점검 때문에 일부 공종이나 공사가 중지된 적 있다고 응답한 현장은 25곳에 달했다. 이는 인력 낭비 및 장비 임차비용 손실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공정 차질을 만회하기 위해 작업을 몰아서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나친 안전점검이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는 셈이다.

안전점검으로 인해 작업이 중지되지 않더라도 업무 부담이 가중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이 아닌 50억원 미만 소규모 현장은 현장대리인이 안전점검 서류 업무도 도맡기 때문에 현장관리 차질이 더 심각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비슷한 내용의 안전점검을 통합하고 기관 간 일정을 조율해 점검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희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 현장 안전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자 각 기관도 담당하는 범위에서 안전사고 예방대책을 잇따라 내놨다”며 “취지는 긍정적이나 중복되는 점검업무에 대해 조율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박 부연구위원은 이어 “동절기 등 주요 위험시기에 필요한 점검은 통합 시행하고 이 밖의 안전점검은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점검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점검 시 요구하는 자료는 개별 점검의 목적에 관련된 것으로 한정해 불필요한 문서 업무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전문가는 “현장에서는 ‘공무원들이 안전점검을 통해 지적사항이나 과태료가 나오는 것들로 실적을 쌓으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며 “서류 중심의 관행적 점검보다 현장 여건에 맞는 점검과 안전 활동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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