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세이드 대박은 '차박' 경험 덕분…고객경험 찾아야 살 수 있다"

[만났습니다]차경진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中제품 기술력 차이 없어..새로운 가치 찾아야"
"기술 중심 사고서 벗어나, 감동 받는 경험 줘야"
"감으로 판단 안돼..데이터로 실험하는 조직돼야"
  • 등록 2022-07-11 오전 7:00:00

    수정 2022-07-11 오전 7:00:00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작년 말 2022년 신년사를 통해 ‘가치 있는 고객 경험’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번 LG 제품을 경험하면 다시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는 의미다. 2018년 취임 후 2019년 신년사에서 LG가 나아갈 방향을 ‘고객’이라고 천명한 이후 이제는 ‘경험’에 방점을 두고 경영을 펼치겠다고 한다.

삼성전자도 작년말 소비자가전(CE)과 IT·모바일(IM) 부문을 통합한 세트(완성품) 부문의 명칭을 ‘DX(Device eXperience·디바이스 경험) 부문으로 조직개편까지 하면서 고객경험 강화에 나섰다. 1995년부터 써온 무선사업부라는 명칭도 26년 만에 모바일 경험을 의미하는 MX(Mobile eXperience)사업부로 변경했다. 고객경험(CX·Customer eXperience)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고객 경험’ 시대다. 다소 추상적인 용어까지 쓰면서 기업들이 고객 경험 강화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이터로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는 DCX(Data driven Customer eXperience) 전문가인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를 지난 8일 만나 답을 들어봤다.

차 교수는 삼성, LG 등 주요 대기업에 데이터 기반 고객경험 혁신을 자문하고 있는 국내 최고 고객경험 전문가다. 차 교수는 “이제는 단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고객들이 잊지 못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기존처럼 기술만 중시하는 사고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사진=김태형 기자)
다음은 일문 일답이다.

-CX 강화가 화두가 됐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하기보다는 이제는 ‘의미’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기술 강화만 외칠 게 아니라 이제는 고객들이 잊지 못하는 순간을 경험하도록 고민을 해야 한다. 고객이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원하는지, 그들은 어떤 생활 습관을 갖고 있고 그 안에 어떤 ‘잠재 니즈(요구)’가 숨어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스타벅스 매장이 성공했던 것은 커피맛 때문만은 아니다. 수다족,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 나홀로족 등을 위한 고객경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편안한 의자배치, 노트북 콘센트 설치, 음악·불빛 등을 설계하면서 스타벅스만의 고객경험을 구현했다.

-고객서비스(CS·Customer Service)활동과 다른가.

△CS는 그야말로 고객의 불편, 항의 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기업이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하면 기업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냉장고의 본질은 음식을 신선하게 오래도록 저장하는 것이다. 음식을 ‘보관’하는 게 중요했다. CS는 냉장기능이 제대로 되는지만 따진다. 하지만 마켓컬리, 쿠팡 로켓프레시 등이 나오면서 오랫동안 보관하는 것은 더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오히려 소비자는 ‘아이 성장 발달에 맞는 최상의 이유식’, ‘당뇨병 관리, 다이어트 관리를 위한 식단 설계’ 이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주는 냉장고를 찾고 있다. 이런 잠재니즈를 발견해 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혁신적인 경험을 주는 게 바로 CX다.

-여전히 소비자들은 최고의 기술을 원하기도 한다.

△대기업들을 만나보면 고객 경험 혁신을 말할 때 기술부터 거론한다. 디스플레이만 해도 최고의 화질, 최고의 색상을 구현해 고객에게 만족감을 줘야 한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고객 경험 혁신은 첨단 기술 확보와 같은 기술 중심 사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는 연비나 주차면적을 고려하면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젊은층에게 ‘차박(차에서 숙박하는 캠핑)’ 하기에 최적화된 차로 알려져 있다. 뒷좌석을 눕히면 4인 가족이 누워 잘 수도 있고 고급 옵션의 경우 넷플릭스 등을 볼 수 있는 스크린도 있다. 음료수를 위한 쿨러와 워머 기능도 갖추고 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던 경험은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차박에 유용한 차’라는 맥락적 의미에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CX를 강화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가.

△공기청정기를 생각해보자. 가장 가성비 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저렴한 중국산 제품 여러 대를 방방곡곡 설치해 공기를 필터하는 것이다. 원가 부담이 큰 우리나라 대기업 제품은 가성비가 딸린다. 그럼 우린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할까. 고객의 잠재니즈를 찾아야 한다. 이를테면 아기가 천식이 있다면, 아기의 기침소리를 감지해 공기 청정기능을 강화하는 제품이 있으면 어떨까. 가격이 비싸더라도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다.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나의 라이프 타임에 맞춰 추천해주고 독거노인의 경우 신체활동 여부를 감지해서 가족들한테 정보를 전달해주는 등 고객경험을 찾아야 한다.

-삼성, LG도 나름 고객경험 강화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비스포크 냉장고가 좋은 사례다. 더는 소비자들이 냉장고 성능과 크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는 생산자 관점에 불과하다. 이를 고객관점으로 바꿔 주거 형태와 공간, 생활 패턴에 맞게 냉장고 문 패널 색상과 소재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LG전자의 워시타워도 좋은 예다. 세탁이 끝나기 전에 미리 건조기로 신호를 보내 예열시간을 단축하면서 전체 세탁·건조 시간을 줄였다.

하지만 관리자를 중심으로 기술 중심 사고가 여전한 것 같다. 최고 스펙의 상품을 만들어야 소비자가 산다는 것이다. 기술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기본이고 고객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고 어떤 새로운 가치를 줄지 재설계해야 새로운 수요를 발굴할 수 있다. 빅데이터, AI, 클라우드 기술 등은 그저 거들뿐이다.

-기기간 연결을 통해 고객경험을 강화할 수 있을까.

△삼성 스마트씽스, LG 씽큐 등을 통해 냉장고, TV, 전자레인지 등 연결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경험은 많지 않은 듯하다. 제품과 외부 서비스 간 연결을 통해 더 큰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로봇 청소기가 집안 청소를 하다가 바퀴벌레를 발견한다면 박멸 키트를 주문하거나 세스코 서비스와 연결할 수도 있다. 차량과 제품 간 연결은 더욱더 많은 경험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소품종 대량생산하는 대기업에는 어려운 과제다.

△특정 틈새 시장을 노려 시장에 진입하는 스타트업에 비해서 대기업이 고객경험 강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대중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 대량 판매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와도 수많은 수직 구조의 의사결정자들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로는 가장 대중적인, 가장 시시한 서비스로 도출된다.

하지만 이런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다양한 고객 수요에 맞춰 제품 생산에 나서야 하는 시대다. 일률적인 제품을 찍기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할 수 있는 스마트 공장 도입이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본다.

-기존 조직과 달리 새로운 조직이 필요한 것 같다

△데이터로 실험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기존처럼 상사의 감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시대는 끝났다. CX담당자들이 고객 데이터로부터 다양한 맥락과 문제를 찾아내고 새로운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CX담당을 따로 둬서는 안 된다. 개발자, 마케터, CX담당자들이 한데 어울러 져야 한다. 기존처럼 제품별로 부서를 나누는 방식이면 안 된다. 아울러 모든 직원은 데이터나 AI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고객을 공감하기 위해 기존적으로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도 갖춰야 한다. 궁극적으로 관리자, 최고의사결정자들이 데이터에 기반을 둔 사고를 하는 게 중요하다.

▷차경진 교수는…

호주국립대학에서 경영정보시스템 박사 학위를 따고 한양대 경영학부 비즈니스인포메틱스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11년부터 삼성, SK, LG, 두산, GS 등에 ‘데이터로 고객 경험을 만들어가는 기술(DCX)’ 프로세스를 강의해 왔고 현재 주요 대기업과 DCX 산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데이터로 경험을 디자인하라’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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