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두부터 마주한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이다. 새해 들어 1월 중에만 건설·제조현장에서 모두 36명이 숨졌다. 위에 언급된 4건 중 3건은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책임을 강화한 법) 시행 보름 만에 발생한 대형사고다.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여전히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노동건강연대|208쪽|온다프레스
책 ‘2146, 529’는 2021년 1월3일부터 12월31일까지 산업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부고를 담고 있다. 노동 현장에서 “끼여” “깔려” “떨어져” “부딪혀” 숨졌다는 동사는 책 곳곳에서 반복되는 말이다. 출근은 했으나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기록이다.
‘2146’은 2021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질병, 사고 등)로 세상을 떠난 사망자 추정치다. ‘529’는 산재사망자 중 사고로 사망하거나 과로사한 노동자의 수를 가리킨다. 노동건강연대는 해마다 2100여명, 날마다 5∼6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그 숫자가 지난 20여년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에서 노동자 산재 사망을 다루는 지배적 프레임은 여전히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다. 노동자의 부주의와 불운, 기업 이윤 활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로 인식한다.
김관욱|388쪽|창비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문화인류학자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가 지난 10년간 현장 연구와 심층 인터뷰,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추적한 콜센터 노동의 현실을 파헤친 르포이자, 인류학 보고서다. ‘무엇이 콜센터 상담사를 아프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추적해온 내용을 집대성했다.
과거 구로공단의 ‘공순이’가 오늘날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콜순이’가 된 현실부터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한 상담사들의 생생한 목소리까지 콜센터의 어제와 오늘을 총체적으로 살폈다. 관리자의 감시와 친절 강요, 성과경쟁으로 돌아가는 운영시스템 등 문제는 도처에 있다. 저자는 이를 ‘총체적 노동 통제’라고 표현했다.
콜센터에 대한 논의를 고객의 갑질 논란이나 상담사의 감정노동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산업 자체가 가진 여성 노동과 인권의 구조적 문제로 확장할 것을 주문한다.
김종진|292쪽|롤러코스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자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책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에서 근로기준법과 사회보장제도에서 열외된 ‘제도 밖 노동자’들에 집중했다. 나라는 선진국에 근접했다는데 갈수록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 일반화, 위험의 외주화 등 급변한 노동환경에서 각자도생에 내몰린다.
방송작가, 경비원, 플랫폼 노동자와 라이더,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수만 무려 744만명. 비정규직이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청소년 및 고령 노동자들도 945만명이나 되지만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풀어냈다.
수년 전 노동자들의 현실이 지금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건 뼈아픈 지점이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자가 쓴 칼럼들을 엮었는데, 최근 이슈와 사회변화의 양상을 충분히 반영해 구체적 대안까지 담아 노동입문서로 손색 없다.
20대 대선은 ‘노동 없는’ 대선이라 불릴 만큼 노동 의제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에 가려진 채 진짜 일상에 놓인 노동자는 대선 공간에선 아예 이슈조차 되지 못한다.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 꼭 읽어야 할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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