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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 9일 반기 전망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경고를 했다. 블랙록은 “일본은 중국경제 둔화에 특히 취약하다”며 “일본중앙은행이 대응하고 있으나 사용할 수단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최대은행인 DBS도 일본 엔화 강세와 부진한 수출을 언급하며 일본 투자 비중을 줄이라고 권고했다. 지난달에는 미국 제프리 파이낸셜그룹이 “일본 엔화 절상과 예정된 소비세 인상은 안 좋은 조합(wrong mix)”라며 일본 증시 하락을 점쳤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가장 큰 성과인 ‘아베노믹스’가 심상치 않다. 미·중 무역전쟁과 중국 경제 둔화 등으로 수출이 부진한데 이어 내수마저 비틀거리는 모양새다. 이대로 아베노믹스가 좌초할 경우, 얼어붙은 한·일 관계의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한·일 경제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무역갈등을 장기간 끌고 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日경제 다시 디플레이션 늪 빠지나
지난 10일 일본은행이 발표한 국내기업물가지수는 전년동월 대비 0.1% 감소해 2년 반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소비자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최종재 가격이 전날에 이어 전년동월 대비 1.1% 떨어진 것이다. 일본 내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가까스로 끌어올린 소비자물가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지 모른다”(타니 신고 미즈호종합연구소 연구원) 우려가 나온다.
실제 지난 5월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2015년=100) 연간 상승률은 0.8%를 기록했다. 29개월째 연속 오름세를 이어 나갔지만 아직도 물가 목표치인 2%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오히려 전월 대비로는 0.1%포인트 떨어졌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여력 역시 바닥을 보이고 있다. 기준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0.1%를 기록하고 있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0% 수준이다. 일본은행(BOJ)은 ‘돈을 찍어 경제를 부양하는’ 통화정책의 한 방법으로 일본 주식 가격과 연동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연간 6조엔씩 매입했고 그 결과 6월 말 기준 도쿄증시 1부(우리나라 코스피격) 상장주식 시가총액 4.9%를 보유하고 있다. 내년에는 일본증시 최대주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이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아베노믹스 버팀목 부러지나…내수도 부진
무엇보다 일본 경제가 놓인 가장 당면한 과제는 들썩거리는 엔화 가치이다. 엔저야말로 아베노믹스의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완화 정책의 가장 큰 효과가 바로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기업의 수출 경쟁력 상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2년 오바마 정부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달러 약세’를 외치며 노골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로 안전통화에 대한 선호심리가 강해지고 달러 강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견제가 매서운 상황에서 이전처럼 엔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서는 것은 쉽지 않다.
순이익 역시 1.1% 감소했다. 일본 소비시장을 견인해왔던 방일 관광객들의 지갑도 닫히고 있다.
아베 토오루 빅카메라 이사는 “엔화 강세, 위안화 약세가 중국인들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10월에는 소비세율이 8%에서 10%로 올라간다. 이미 두 차례 이뤄진 소비세 인상 과정에 일본 경제는 소비 둔화 등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아베 정부는 이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 등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하고 인상된 세금을 포인트로 환원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일본 종합가구업체인 니토리홀딩스의 니토리 아키오 회장은 “소비자들의 절약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가 휘청거릴 경우, 지금까지 강경 일변도로 대응해왔던 일본 정부 역시 방향을 전환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직 외교관 출신인 미야케 쿠니히코 리츠메이칸 객원교수는 “한·일 모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시각을 내보이고 있다”며 “기업이나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거리는 등 실질적인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전환점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