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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감정원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서종대(사진·56) 한국감정원 원장은 독서가 학창시절 삶의 방향을 알려준 나침반 역할을 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추천하는 책은 언제나 호기심을 끈다. 그들이 보고 느낀 지혜를 우리도 배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한편으로 어렵고 딱딱한 책을 권하지 않을까 되레 걱정도 된다. 그런데 서종대 원장이 내놓은 책은 좀 의외다. 글과 그림이 보기 좋게 섞여 있는 큼지막한 만화책. 풍성한 삽화에 마음이 가벼워질 무렵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란 제목이 눈에 띈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특히 동서양을 아우른 세계사를 무척 좋아합니다. 사람들의 지혜라는 것이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아는 ‘온고지신’의 연속이다 보니 성인들의 경험을 통해서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주변 지인들은 물론 직원들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책입니다.”
5권짜리 만화책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구의 빅뱅에서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흐름을 촘촘히 담아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 UC 버클리 대학에서 부교재로 쓰일 만큼 정평이 난 책이다. 저자인 래리 고닉은 하버드대 수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밟던 중 전업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 때문에 과학 전공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우주 지식과 역사관이 책 곳곳에 녹아 있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99년 탁월한 만화가에게 주는 ‘잉크포트 상’을, 2003년에는 만화의 오스카상이라 할 수 있는 ‘하비상’까지 받았다. 미국의 권위 있는 만화 전문지 ‘더 코믹 저널’이 뽑은 20세기 100대 만화에도 선정됐다.
실제로 서 원장이 오랜 기간 탐독한 세계 역사는 해외 출장길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서 원장은 해외 출장길에 오를 때면 방문국의 역사 서적과 그 나라를 배경으로 한 유명 작가의 책들을 꼭 챙긴다. 비행시간 동안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관련 서적을 읽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그는 “방문하는 나라의 역사를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 방문의 첫 덕목이라 생각한다”며 “방문국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주재국 관계자는 물론 현지인들과도 친밀해 지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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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원장은 유독 청소년의 독서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7월 대구시 동구 한국감정원 본사 1층에 ‘KAB 열린 북카페’를 개장한 것이 그 첫걸음이다. 시사·문화·교양·여성·육아·아동 등 1000여 권의 신간과 함께 문을 연 KAB 열린 북카페는 1년 새 보유 도서가 2500권으로 껑충 뛰었다. 연중 무휴로 운영되면서 인근 지역 주민이 찾는 쉼터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북카페를 찾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독후감 공모’까지 진행해 이달 4일 시상식을 열기도 했다.
서 원장이 최근 관심을 두기 시작한 분야는 인문학이다. 역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이나 종교, 문학 등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흐름을 읽기 위해서다. 그에게 청소년을 위한 책을 한 권 더 추천해달라고 묻자 명심보감을 꼽았다. 그는 “고려 때 어린이들이 서당에서 배우던 책인데 훌륭한 글귀가 가득하다”며 “세상을 사는 지혜를 배우는 과정에서 꼭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초반 온고지신을 강조한 서 원장의 독서 철학이 또 한 번 강조되는 대목이다.
※서종대 한국감정원 원장은…
1960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순천고와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대 대학원에서 경제정책학 석사학위, 한양대 도시대학원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해 옛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서 도시건축심의관, 신도시기획단장, 주택국장, 주거복지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초빙교수, 주택금융공사 사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