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세계 1위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국내 파생상품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파생상품시장이 죽자 투자자들도 떠나고 그로 인해 시장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주식 등 다른 자산과 연계돼 있는 특성상 파생상품시장 추락은 한국 자본시장 활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식해 파생상품시장 활성화 대책 마련에 착수,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번 가라앉기 시작한 파생상품시장을 살리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들어 이달 22일까지 장내 파생상품 일평균거래량은 264만계약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 줄었다. 거래대금 역시 35조원으로 전년동기 51조에 비해 32% 급감했다.
해외 거래소라고 거래가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유독 한국 파생상품 거래량 감소폭이 크다. 세계거래소연맹(WEF)에 따르면 아시아 지수선물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는 중국금융선물거래소의 경우 올들어 4월까지 지수옵션 거래량이 전년동기대비 3.6% 감소하는데 그쳤고, 오사카거래소의 지수선물과 옵션 거래량은 18.7% 줄었다. 인도 봄베이 증권거래소의 지수선물과 옵션 거래량은 되레 86% 증가했다.
지난 2011년에만 해도 거래량을 기준으로 한국거래소의 파생상품 시장은 전세계 거래소 중 1위였지만 2012년 5위로 밀려났고 작년에는 9위로 더 떨어졌다. 특히 대표상품인 코스피200옵션은 단일 상품 기준으로 지난 2000년부터 부동의 1위를 유지했으나 2012년 거래승수를 10만계약에서 50만계약으로 대폭 상향조정하면서 작년 인도의 S&P CNX 니프티옵션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중국과 일본의 추격은 무섭다. 작년 한해 한국 파생상품시장 거래량이 55% 이상 감소한 반면 중국과 일본 거래량은 나란히 39% 가량 증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2011년 7위에서 작년 3위로 급부상했고 일본은 9위를 지켰다.
일본은 ‘규제 완화’를 내건 아베노믹스를 바탕으로 파생상품 시장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작년 도쿄증권거래소와 오사카증권거래소 합병으로 설립된 JPX는 2015년까지 파생상품 거래를 두배로 늘려 아시아 파생상품시장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순위 더 밀릴 수 있다
증권업계는 한국 파생상품 시장이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라고 보고 있다. 그만큼 앞으로 더 추락할 수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이다.
특히 한국거래소가 위기감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일본 파생상품 시장 거래시간이 한국과 동시간대라는 점이다. 중국도 한국과 시차가 1시간에 불과해 아시아 파생상품 시장에 투자하겠다면 유동성이 풍부하고 계약 크기나 상품 다양성 등에서 유리한 일본과 중국을 찾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부도 대책마련에 고심중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내 증권사 뿐만 아니라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들과 만나 의견을 듣고 조만간 파생상품 활성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위는 파생상품시장 족쇄로 지목됐던 규제를 완화하기 보다는 금융상품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자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김도연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 상무는 “거래소도 과거 1등이었던 시절 너무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며 “전세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파생상품시장에 대해 홍보도 하고 투자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설명>
☞ELW
주식워런트증권. 기초자산을 사전에 정한 미래 일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거나(콜) 팔 수 있도록(풋) 권리가 부여된 유가증권. 공모를 거쳐 거래소에 상장되면 주식처럼 거래가 이뤄지며 만기시 최종 보유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옵션거래승수
옵션거래의 단위다. 옵션 1계약은 거래승수 1단위다. 지난 2012년 3월부터 코스피200지수 옵션거래의 승수가 기존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랐다. 거래승수 역시 1계약당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향된 것. 1계약을 할 때마다 5배의 돈이 더 필요한 만큼, 개인투자자의 위축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