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시장 최대 이슈중 하나는 미국 채권시장 랠리 얘기다. 시장 전망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는 이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채권시장 랠리는 이제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을 분위기다.
◇ `채권투자의 시대`
31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올들어 미국 채권 투자수익률이 7.63%로, 이는 지난 2002년 이후 9년만에 가장 높았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로 인해 최근 30년간 장기채권의 투자수익률은 11.5%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10.8%를 웃돌았다. 지난 1861년 이후 30년간 수익률을 비교하면 매번 주식시장이 채권을 앞섰는데, 이번에 150여년만에 처음으로 채권이 주식을 앞선 것.
특히 올들어서는 미국 국채값이 7.23% 상승한 것을 비롯해 공사채가 8.17% 올랐고 회사채는 6.24%, 모기지채권이 5.11% 각각 상승하는 등 모든 종류의 채권들이 강세를 보였다.
지난주에도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지수에 따르면 채권 투자수익률이 6.25%로, S&P500지수 투자수익률인 2.18%를 거의 3배 가까이 앞질렀다.
◇ 전문가들도 몰랐다
이같은 채권시장 강세는 대부분 전문가들도 예상못한 일이었다.
빌 그로스는 미 국채가격 하락을 전망하며 2월에 국채를 모조리 내다 팔았다가 뒤늦게 9월부터 미 국채를 다시 사들이고 있지만 그가 운용하는 `토탈리턴펀드`는 올해 2.55%로, 업계 하위권 수익률을 기록했다.
탈렙도 지난 2월 한 강연에서 "투자자들이 피해야할 첫번째 자산은 미 국채"라며 국채가격 급락을 점쳤지만 이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 `그들은 뭘 놓쳤나`
이같은 미국 채권 강세는 미국의 코어인플레율이 올들어 평균 1.5%에 머물고 있고 연방준비제도(Fed)는 초저금리를 2013년 중반까지 유지하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채에 대한 비관론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글로벌 재정위기로 성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미국인들이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렸다는 점이다. 이런 저축자금 가운데 상당수는 채권시장으로 흘러 들어왔다. 유럽 재정위기 우려와 리세션 우려, 주식시장 급락 등이 힘을 보탰다.
미국 저축률은 지난 2005년 이후로 3.6%까지 증가해 무려 3배로 높아졌다. 지난 2008년 12월 금융위기가 절정을 보였던 시기 이후로 평균 5.1%나 됐다. 이는 이전 10년간 평균인 3.1%보다 훨씬 더 높다.
◇ "채권랠리 계속된다"
채권금리가 극히 낮은 수준까지 내려온 상태지만 여러 여건상 이같은 채권 강세장이 좀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 9월에 근원인플레는 0.05% 상승해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보였다. 10년만기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를 감안할 때 채권시장에서는 향후 10년간 물가 상승률을 2.15%로 보고 있는데 이는 8월의 2.67%보다 크게 낮아졌다.
올해 블룸버그 서베이에서 72명의 전문가들 가운데 10년만기 국채금리가 3%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던 3명중 하나인 크리스 로우 FTN파이낸셜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앞으로도 자신들의 멘데이트인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인플레가 큰 걱정거리가 아닌 한 연준은 부양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웰스파고의 제이 뮬러 채권 펀드매니저도 "연준은 국채금리를 더 끌어내려 다른 금리들이 이를 따르도록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랙록 릭 리더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재정긴축 확대와 지속적인 고실업, 레버리지 축소 하에서도 미국경제가 2%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여전히 채권쪽에 무게를 뒀다.
◇ "채권, 올 때까지 왔다"
반면 여전히 채권 랠리가 지속되기 어려운 만큼 채권을 줄이고 위험자산을 늘리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헤지펀드인 오메가 어드바이저스의 레온 쿠퍼맨 회장은 최근 한 가치투자 컨퍼런스에서 "그래도 우리는 미 국채를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4년 베스트셀러인 `주식투자 바이블`을 펴낸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의 제레미 J. 시겔 교수도 "이같은 채권시장 랠리는 밀레니엄적 이벤트"라고 전제한 뒤 "앞으로도 계속 채권시장이 이런 수준의 수익률로 주식을 앞서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미 이번 채권랠리를 놓쳤다면 그걸로 끝"이라고 말했다.
빌 그로스 CIO 역시 이날 핌코 월간 투자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경제는 `뉴 노멀` 경제하에서 3%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고 연준의 추가 부양조치로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며 만기 10년 이상인 장기채권을 줄이고 단기채권과 배당이 높은 주식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