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틀짜는 세계경제)②"新경제질서, 필요하긴 한데.."

브레튼우즈체제 사실상 60년이상 지속..금융위기로 흔들
유럽 중심 新브레튼우즈 체제 주장 급부상..결론은 `아직`
IMF, 전세계 중앙은행化 변화 시도..반대의견도 만만찮아
  • 등록 2009-10-08 오전 9:30:00

    수정 2009-10-08 오전 10:45:34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공고했던 `달러와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의 질서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촉발했다. 
 
대(大)위기의 결과가 결국 대(大)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위기의 진앙이었던 미국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면서 `달러의 나라` 미국 중심 질서의 변화가 요구됐으며, 이는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기존 질서의 구심점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역할 변화의 필요성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실제 선진국 일부가 쥐었던 세계 경제 질서의 패권도, 개발도상국의 목소리가 커지며 주요 20개국(G20)으로 이전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가 엇갈리며 아직은 하나의 방향으로 의견이 수렴되고 있지는 못하다.

◇ 사실상 계속돼 온 브레튼우즈 체제

2차 대전 막바지였던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 모인 서방 44개국들은 전후 세계 경제 질서를 위한 협정을 맺는다.

금 1온스(약 31g)당 미국 달러 35달러를 교환 비율로 고정(태환)시키고, 달러를 세계 무역의 결제 통화, 즉 기축 통화로 삼기로 했다. 달러를 기준 삼아 각국의 화폐를 평가, 고정 환율로 외환 시세를 정하기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탄생됐다. 

 환율 변동 관리를 위해 국제 기구 IMF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창설도 합의했다. IBRD와 국제개발협회(IDA), 국제금융공사(IFC), 국제투자보증기구(MIGA) 등이 한데 묶여 세계은행으로 통칭된다.

겉으론 위기에 전세계 국가들이 모여 연합체를 만들고 다자주의와 공조를 통해 세계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런 `형식` 속의 `내용`은 결국 미국의 패권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과 달러의 교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깨졌지만, 이후에도 달러화 가치가 하락을 지속했어도 달러의 패권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 때문에 가능했다. 중국 등 무역 흑자국들은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달러 자산(미 국채가 대표적)을 사들이는데 썼다. 수출 부양을 위해 자국 통화가 더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으로선 이런 구조로 적자 구조도 메우고 저금리도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소비의 대국으로서 성장을 계속했다. 이것이 바로 `브레튼 우즈 II` 체제다. 

하지만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금융 위기는 이 구조도 망가뜨렸다. 미국 경제는 기반부터 흔들리게 됐고, 더 내릴 수 없을 만큼 금리를 내리면서 달러화 가치 하락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게 된 것이다.

◇ `新 브레튼우즈 체제` 주장 급부상

한 측면에서 위기인 상황도 다른 측면에선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흔들리자 그동안 미국을 고깝게 봤던 유럽은 세계 경제를 유럽으로 돌릴 수 있는 적기라 판단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지난해 10월 신(新) 브레튼우즈 체제 도입을 주창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그 주장에 힘을 실었다.
 
국제적인 지위 향상을 원하는 중국과 러시아도 달러를 대신할 새로운 세계 통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런 주장은 지난해 11월 첫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크게 불거졌지만 각론에 있어 이론만 드러났을 뿐, 결론은 도출되지 못했다. 관련기사 ☞ (G20 회의)美-달러에 대한 `도전과 응전` 
 
미국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의의 진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60년 동안 잘 작동돼 왔던 체제를 뒤엎으려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난 달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3차 G20 정상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세계 중앙은행` 꾀하는 IMF
 
물론 변화가 필요하다는 대세는 거스르기 어렵다. 지난 주부터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IMF-WB 연차총회에선 이런 얘기들이 수면 위로 구체화하고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산물 IMF도 변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이번 위기때 아무 역할도 못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도 중대한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IMF는 `전세계 중앙은행`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금융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중심적인 존재이자 최종 대부자인 중앙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IMF의 재원이 충분하다면(그래서 위기에 어렵지 않게 지원할 수 있다면) 각국은 보험의 성격인 외환보유액을 쌓아야 할 유인이 줄어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경제를 위해 더 많이 쓸 여분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도국에 쿼터를 이전한 것도 이들의 발언권을 높이면서 갖고 있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재원으로 충당하겠다는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도 "앞으로 IMF가 회원국들에 유동성과 통화 스와프를 제공하는 중앙은행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론도 적지 않다. 셰쉬런 중국 재정부장은 IMF가 세계 통화 시스템의 본질적인 결함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하며 다른 역할론을 폈다. IMF가 먼저 나서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티 아크타르 아지즈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총재도 "중앙은행화 하려는 IMF의 의견은 적어도 말레이시아의 경우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IMF가 말레이시아 등 개도국이 저평가된 환율 때문에 내는 무역흑자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크게 늘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단기 자금유입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IMF가 전세계 중앙은행화하면 각국의 외환보유액 축적 필요성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는 IMF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악셀 베버 독일 중앙은행 총재 겸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 역시 IMF의 역할 확대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재원을 일시적으로 크게 늘리는 것이 모럴 해저드 논란을 불러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스트로스-칸 총재는 IMF가 향후 위기를 막아내는데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보고 지금 기회를 잡으려 하고 있지만 그렇게 할 것이란 확신은 없다"고 밝혔다. 또 스트로스-칸 총재는 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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