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주가가 오를 땐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세장에서 상황은 일순 달라진다. 투자자건 거래자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주가가 하락하는데 따른 심리적, 금전적 부담을 남에게 전가시키고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개인투자자들이 증권사 객장으로 몰려가 행패를 부리고 추천종목을 내놓은 증권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이 주가하락 때문만은 아닌 경우도 있었다. 수년전에는 모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혹독한 곤욕을 치룬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경쟁사를 음해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려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이경우 문제는 결국 애널리스트의 책임한계와 모럴 해저드(도덕적 위해)로 집약된다. 물론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책임한계가 명확하면 도덕적 위해는 줄어들게 되고 그 반대도 성립하겠지만 정보에 민감한 증시의 속성상 애널리스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언제나 상존한다.
정보에 목말라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애널리스트의 의견을 무작정 믿자니 불안하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어딘지 아쉽다. 물론 투자와 관련된 결정은 전적으로 자신이 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의 경우 애널리스트의 문제는 한국적 상황처럼 복잡한 양상을 띄지는 않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한다. 그 핵심은 모럴 해저드 문제다. 최근 미국 증시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지자 애널리스트들이 그 어느때보다 곤욕을 치루고 있다.
미국 역시 애널리스트가 한 종목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쁘다고 평가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올 경우 애널리스트의 평가를 믿고 주식을 매도한 투자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있지만 금전상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 다만 애널리스트의 신뢰성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뿐이다. 문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투자자가 금전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는데 있다. 더구나 이같은 애널리스트의 평가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최근들어서 월가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적잖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목요일 한 투자신탁회사는 월가의 잘나가는 6개 증권사를 상대로 뉴욕에 소재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크레딧 스위스 그룹의 CS 퍼스트 보스턴,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플릿 보스턴의 로벗슨 스티븐스, 그리고 시티그룹의 살러먼 스미스바니가 그 타겟이 됐다. 소송의 핵심은 이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추천한 종목의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것. 이들 증권사들은 기업들의 증권발행과 관련된 주간사업무 등을 통해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게 되는데 이같은 거래를 확보할 목적으로 해당 업체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월가는 전통적으로 투자은행업무와 리서치업무간에 이른바 "차이니즈 월(차단벽)"을 설정하고 있긴 하지만 통상 증권사들은 애널리스트가 담당하는 업체와의 투자은행업무에서 벌어들인 수수료의 일부를 애널리스트들에게 분배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이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집단소송으로까지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 소송에서 원고측은 애널리스트들이 종목추천 직전에 해당종목을 매입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나섰다.
이밖에도 투자자들의 증권사 및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소송제기는 수없이 많다. 지난 수요일에는 투자자들이 모건스탠리회사와 애널리스트인 매리 미커에 대해서도 역시 소송을 제기했다. 타당한 근거없이 종목을 추천해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또 지난달에는 메릴린치의 저명한 헨리 블라짓이 추천한 종목과 관련, 메릴린치는 투자자들에게 40만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한 바가 있었고 지난 6월에는 살러먼 스미스바니의 텔레콤 전문 애널리스트인 잭 그럽만이 AT&T에 대한 투자등급을 상향조정한 이후 주가가 거의 50%나 하락했다며 소송 대상이 되기도 했다. IPO와 관련해서도 이미 올들어서만 105건이 집단소송에 걸려있다.
실제로 투자자들의 증권사에 대한 집단소송은 올들어 7월말까지 238건에 이르러 지난해 한해동안의 210건을 이미 넘어섰고 연말까지는 300건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들이 해당 애널리스트의 종목추천이나 긍정적인 평가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음이 객관적으로 입증돼야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고 자칫 투자자의 모럴 해저드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투자는 전적으로 개인책임이라는 명제와 관련해서는 투자자들도 별로 할 말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손해를 입은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자칫 결백한 애널리스트를 건드릴 경우 전체적으로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애널리스트의 모럴 해저드 문제는 언제나 발생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끊임없이 모색돼야겠지만 결국 애널리스트의 분석자료는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일 뿐, 투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책임하에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