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는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사용자에게 묻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근로자의 동기부여도’는 매년 최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반면 국제노동단체들은 우리나라의 ‘노조 할 권리’ 보장 수준이 세계 최하위 등급이라고 혹평한다.
근로손실 일수 등 통계로 본 노사관계는 안정적임에도 부정적인 인식과 평가가 지배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공식 통계가 화물연대 집단행동과 같은 실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한번 분규가 발생하면 뫼비우스 띠와 같이 출구 없는 갈등이 무한 반복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업이 망해도 투쟁은 계속되고, 대법원 판결도 사법농단으로 치부되는 풍토에서 합리적 대화와 타협은 설 곳이 없다.
법치에 대한 지지 여론이나 새로운 청년 노동운동의 출현은 불합리가 지배하는 노동체제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키지만, 퇴행적 정치와 노조의 카르텔은 공고하다. 철벽을 깨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개혁은 ‘무모한’ 도전인가. 독일의 슈뢰더가 그랬고 지금 프랑스의 마크롱이 그러하듯이 정권의 운명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득권 담합을 깨지 못하면 ‘노동개혁’은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이다.
|
그러나 ‘게임의 규칙’이 주체들 간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개혁의 첫째 대상은 규칙보다 노사관계의 주체가 돼야 하지 않을까. 규칙과 인프라가 세계 최고라 해도 선수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노동운동가는 투사가 아니라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와 합리적인 협상가로서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만국의 노동자는 계급투쟁이 아니라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기업도 노조도 존립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사관계를 바꾸려면 사용자도 노사 파트너십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합리적 노사관계가 정착된 나라는 최고경영자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발휘했다. 노사가 선수라면 정부는 심판에 해당한다. 경기를 공정하게 주관하려면 그에 걸맞은 지식과 경험, 권위를 갖춰야 한다. 신록의 계절인데 안타깝게도 노사정의 모습에서는 생기를 찾을 수 없다. 노조는 불법·부패 혐의로 전전긍긍하고, 경영계는 존재감이 없으며, 정부는 자신감을 잃은 듯하다.
허나 수십 년 묵은 노동체제를 개혁한다는 것은 노동법 몇 개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긴 호흡이 필요하다. 노사단체는 우선 불법과 단절하고 합리적 노사관과 정책역량을 갖춘 인재 키우기 경쟁을 해야 한다. 정부도 제도 설계변경에 앞서 실태 파악에 힘쓰고, 노동경영대학원 육성, 노동교육원 혁신, 연구기금 확충 등 노사관계 인재 양성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사관계 합리화, 그 첫걸음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