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검찰 정상화` 추진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주장과 `문재인·이재명 방탄법`이라는 국민의힘의 반박은 잠시 접어두자. 어차피 시각차가 큰 사안을 둘러싼 진영 간 프레임 싸움에서 접점을 찾기란 애초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분리(주로 `박탈`이라고 표현된다)하는 내용의 법안을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뒤, 검찰 조직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기괴하고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총장은 검사장급 회의를 잇달아 소집하고, 고위 간부들은 라디오 인터뷰 출연을 자청하거나 기명 칼럼을 투고하는 등 여론전 전면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평소 언론 노출을 꺼리는 조직의 습성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검찰 조직이 느끼는 위기 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 김오수 검찰총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반발하며 사의를 밝힌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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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민주당의 당론 법안에 반대하며 내세우는 논리는 비슷하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 “범죄가 처벌받지 않고 증발돼 버리지 않도록 일은 계속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논리로 형사사법 국가시스템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사의를 표명한 김오수 총장도 “국민의 인권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새로운 형사법 체계는 최소한 10년 이상 운영한 이후 제도 개혁 여부를 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경우에도 공청회, 여론수렴 등을 통한 국민의 공감대와 여야 합의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민주당의 시나리오대로 4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처리될 경우, `돈이나 빽`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입게 되거나 주요 수사 영역에서 일시적인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통제 권한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학계의 비판도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검찰이 반대 명분으로 앞세우고 있는 인권 보호·국민 피해 같은 말은 솔직히 듣기 거북하다. 먼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뼈를 깎는 성찰과 쇄신을 다짐했지만, 왜 검찰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높고 결국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 돌아봐야 한다.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내로남불`과 `검로남불`, 정치적 수사와 기소, 그리고 선택적 정의란 측면에서 말로만 환골탈태를 외쳤을 뿐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탓이 크다.
`약촌오거리 사건` 진범을 무혐의 처분한 책임을 느껴 15년 만에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를 한 김훈영 부장검사 같은 사람은 드물다. 지금껏 기관 차원의 사과는 있었어도, 정작 사건을 처분한 검사 개인은 조직의 그늘에 숨은 채 과오를 고백하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을 사과했다거나 책임 검사들을 징계했다는 얘기도 듣지 못 했다. `99만원짜리 불기소 세트`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고도 사회적 비판에 모르쇠 한 조직이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당장이라도 무법천지에 내몰리는 것마냥 호들갑을 떠는 것은 그래서 더욱 불편하다. 그간 누려온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무력 시위로 비치지 않으려면 `공정과 상식`에 걸맞은 형사사법 체계 재정립을 위한 협조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