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생활고·안면마비…음악이 다 치유하더라

24일 독주회 여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
아버지 반대 딛고 클래식 입문
유럽 음대 3곳 수석 졸업하고
유수 콩쿠르 수상 이름 떨쳐
음악이 곁에 있기에 역경 이겨내
  • 등록 2021-09-14 오전 5:45:00

    수정 2021-09-14 오전 5:45: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명으로 꼽히는 티보르 바르가(1921~2003)가 보낸 찬사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45)가 지난 2003년 티보르 바르가 콩쿠르에서 2위를 했을 때다. 저널리스트 베른트 호페는 김응수를 또 다른 바이올린 거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와 비교하며 “오이스트라흐를 연상케 하는 새로운 마에스트로”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 아트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사진=WCN코리아)
해외에서 이 정도의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김응수라는 이름이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저평가된 연주자’라는 수식어가 아직도 꼬리표처럼 따라니고 있을까. 오는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여는 단독 리사이틀 ‘다스 레벤’(Das Leben)을 통해 김응수가 국내에서도 제대로 평가를 받는 계기를 마련할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그는 이번 공연에 자신의 인생을 담아낼 예정이다. 공연 타이틀이자 최근 발매한 새 앨범의 제목을 독일어로 ‘삶’을 뜻하는 ‘다스 레벤’(Das Leben)이라고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6년 아버지에 이어 지난해 어머니까지 떠나보낸 김응수는 부모님에 대한 추모의 뜻과 삶에 대한 고민을 이번 앨범에 담았다. 오랜 생활고, 그리고 두 번의 안면마비를 이겨내고 음악가로 다시 나선 그다. 김응수는 최근 이데일리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삶과 음악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을 하면서, 음악이 지닌 아름다움과 힘으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넉넉치 않은 생활 형편에 콩쿠르 나서

김응수의 이력을 보면 대학을 세곳이나 다녔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국에서 서울예고를 졸업한 뒤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빈 국립음대, 그라즈 국립음대와 독일의 하노버 국립음대를 다녔다. 세곳 모두 만점으로 수석 졸업했다. 김응수는 “보리스 쿠시니어, 크리스토프 베그르진, 이고르 오짐 등 꼭 배우고 싶은 선생님을 찾다 보니 대학을 세 군데나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욕심을 엿보게 한다. 티보르 바르가 콩쿠르 외에도 이탈리아 지네티 국제콩쿠르 1위, 그리스 마리아 카날스 국제콩쿠르 1위 등 유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 및 입상하며 유럽 클래식계에 이름을 떨친 것은 이 같은 부단한 정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응수는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바이올린을 처음 잡았다. 당시엔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이북 출신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이 클래식 연주자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을 염려했다. 당시 바이올린 선생님이었던 평태식 영남대 명예교수가 힘이 됐다. 김응수의 재능을 눈여겨 본 평 교수가 “1년만 시켜보고 결정하라”고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김응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생활형편이 늘 넉넉하지 않았다. 그가 콩쿠르에 자주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1999년 유학 중 만난 피아니스트 채문영과 2003년 결혼을 하고 나서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2004년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듀오 소나타 부문에 아내와 함께 출전한 것은 그의 인생에서 유명한 일화다. 당시 이들 부부는 1등을 차지했다.

2012년에는 생활이 어려워진 부모를 돕기 위해 귀국을 결심했다. 당시 부모의 사업 실패로 재산 가압류의 위기를 겪게 되자, 김응수는 한양대 음대 교수 제안을 수락했다. 교수로 재직하며 부모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1년간 고시원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 아트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WCN코리아)
악기 반납 스트레스로 안면마비…음악으로 치유

그의 얼굴에는 팔자주름이 선명하다. 40대 중반의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2004년 찾아온 안면마비의 치료가 늦어지면서 남은 흔적이다. 이어 2006년에도 또 다시 안면마비가 찾아왔다. 연주자로서 그의 인생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다.

김응수는 “원래 제 악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쭉 써온 공장제 악기였다”며 “연주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스폰서를 통해 좋은 악기를 썼지만, 악기를 반납해야 할 때가 찾아오자 스트레스가 심해져 안면마비가 찾아왔다”고 털어놨다. 연주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음색을 낼 수 있는 악기와 만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악기를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은 연주자로서 당연한 스트레스였지만, 그것이 안면마비로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연이은 콩쿠르 우승으로 화려한 커리어를 막 시작한 그에게는 막대한 타격이었다. 두 번째 안면마비가 왔을 때는 14회로 예정돼 있던 러시아 순회연주까지 취소해야 했다.

현재는 연주를 하며 모은 돈으로 구매한 1750년산 스토리움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고가의 악기라 악기 소유주가 천천히 값을 지불해도 된다고 해 틈틈이 갚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힘겨운 삶에도 김응수가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 늘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튜닝하는 소리만 들어도 힘이 난다”며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음악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겐 큰 원동력이었고, 그 힘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에서는 드보르작의 ‘네 개의 로맨틱 소품’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등 앨범 수록곡과 함께 모차르트, 베토벤, 야나체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려줄 예정이다. 앨범 녹음에 참여한 아내 채문영이 공연도 함께 한다. 김응수는 “자연의 소리에 인간의 철학과 감정이 담긴 것이 곧 음악”이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 모두가 힘든 순간에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음을 느끼고 치유의 힘을 받아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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