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YS·DJ 이후의 민주주의

  • 등록 2015-11-27 오전 3:00:00

    수정 2015-11-27 오전 3:00:00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통해 민주주의 쟁취의 최일선에서 활약했던 정치투사가 바로 YS(김영삼)와 DJ(김대중)이다. 5·16 군사정변 이후 30년 가까이 지속된 군부독재정치에 맞서 싸우면서 목숨을 건 단식을 시도했는가 하면 정보기관 요원들에 납치당해 현해탄에 수장당할 뻔했던 위기의 주인공이 이들이다.

그중에서도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YS의 경구는 암울했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79년 당시 야당 총재이던 그가 유신정권에 의해 의원직을 박탈당하면서도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 표현이었다. YH여공 농성사건 직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반정부 발언을 한 것이 빌미가 됐던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회복되었고, 두 사람도 차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박정희 이후 전두환·노태우를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로 권력이 넘겨지는 과정을 거쳐 이름 그대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이루었던 것이다. 무장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워 서울 시내에 진주했던 ‘계엄령의 시대’도 까마득한 과거의 얘기가 되고 말았다.

이제 YS가 DJ에 이어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지금 우리 민주주의가 과연 제 갈 길을 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법 개정으로 ‘체육관 선거’가 철회되고 직선제 투표로 대통령을 뽑게 된 데다 언론·집회의 자유를 되찾고 노조활동을 보장받게 됐다며 환호하던 그 시절의 다짐이 바로 이런 것이었는가 하는 얘기다.

이런 질문에 만족스런 답변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절제하기 어려울 만큼 민주주의가 과잉된 상황에서 초래된 결과다.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 주변에서 벌어지는 무질서한 시위가 단적인 사례다. 얼굴을 가린 복면 시위대까지 등장한 마당이다. 시위 지도부가 극렬시위를 주도하고는 종교의 보호막에 숨어 들어가기도 한다.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엄연히 지켜야 할 범위가 존재한다. 민주주의란 법을 지키자는 것이지, 남의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잖은가. 과거 군부시절 시위가 벌어지면 무장경찰이 최루탄을 터뜨리며 골목까지 쫓아 들어가 무자비하게 대학생들을 연행하던 데서 지금은 경찰이 청와대 쪽 진출만은 막겠다며 수비선을 친 모습도 차이점이다.

지난날 YS와 DJ가 대통령 재임시절 추진했던 제도나 정책도 겉돌기는 마찬가지다. 이른바 ‘풀뿌리 민주정치’를 실현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지방자치제도가 단체장들의 전횡과 비리로 얼룩져 있으며,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막겠다는 재산공개 제도는 위장전입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금융실명제에 있어서도 지금에 와서야 거액의 차명 재산을 슬그머니 자기 이름으로 전환하는 기업인이 있을 정도다.

국민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국회의 모습은 더욱 처연하다. 여야 협상에서 당리당략을 놓고 흥정이 벌어지는가 하면 민생법안은 뒷전에 버려둔 채 자기들의 세비를 올리는 데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는 그들이다. 국회가 하나의 이익단체로 전락했다는 코웃음이 나돌 만도 하다. 지난날 YS와 DJ를 따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벌였던 주역들 대부분이 정치판을 거쳐간 상황에서도 국회의 모습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YS와 DJ를 비롯한 민주열사들의 희생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가 실현됐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YS를 영원히 떠나보내며 민주주의가 과연 왜 필요하며,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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