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스타서 치매노인까지…30년차 이재은의 변신

"치매 걸린 외할머니 떠올렸다"
연극 '숨비소리'서 치매노인 연기
대학로 예술마당 1관서 공연중
  • 등록 2015-02-09 오전 6:00:10

    수정 2015-02-09 오전 6:00:10

연기 30년차 배우 이재은이 이번엔 치매 노인으로 대학로 무대에 섰다. 살 날이 많이 남은 아들과 그때가 얼마 남지 않은 우리네 어머니의 이야기를 연극 ‘숨비소리’에서 소소하게 풀어낸다. 공연은 서울 이화동 예술마당 1관에서 내달 1일까지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이번엔 ‘노인’이다. 더군다나 치매에 걸린 70대 노모라니. 배우 이재은(36)이 올해 첫 작품으로 선택한 연극 ‘숨비소리’의 역할이다. 치매를 앓는 백발노인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다니던 길을 잊고, 공원 한복판에서 볼 일을 보는 등 90여분 동안 한 여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집중한다. 극이 시작되면 포스터 속 흑발의 배우 이재은은 온데간데 없다. 힘을 빼고 툭툭 던지는 대사 끝엔 내공이 담겨 있다. 30년 연기인생의 무게가 오롯이 읽힌다.

◇“연기는 끝없는 배움”

1986년 드라마 ‘토지’의 어린 서희 역으로 일약 스타가 됐을 당시 고작 여섯 살이었다. 다섯 살 때 ‘적도전선’으로 데뷔, 이듬해 ‘토지’에서 어리광 부리는 어린 서희로 등장해 시청자의 시선을 끌었다. 이후
1988년 드라마 ‘하늘아 하늘아’에서 혜경궁 역을 맡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
‘하늘아 하늘아’ ‘조광조’ ‘한명회’ ‘전설의 고향’에 잇달아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경력을 쌓았다. 영화 ‘노랑머리’(1999)와 ‘세기말’(2000)에선 노출 연기를 서슴지 않는 등 본격 성인배우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2005년엔 트로트 가수로도 데뷔하는가 하면 지난해부터는 1인극에 심취해 쉽지 않은 역할을 고집해왔다.

“어린 나이에 큰 사랑을 받았지만 천진난만한 유년시절을 잃었다. 그만큼 배울 수 있는 시기도 놓친 셈이다. 방송에서는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과거 친한 PD도 모두 세대교체 됐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 경력도 많다 보니 어린 PD들은 나를 어려워 하는 분위기다. 차라리 현장무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들을 배워 나가는 중이다.”

이번 역할도 그 연장선이라는 게 이재은의 얘기다. “내 나이에 못하는 연기를 도전하기도 하고 내 나이에 맞는 역할도 맡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관객과 호흡을 맞추고 스태프들에게 배운다. 배우로 남고 싶다. 배우라는 수식어가 가장 좋다.”

◇치매 앓던 외할머니 떠올리며 연기

“연극을 보고 난 관객들이 ‘부모님께 전화 한 번 해볼까’라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연기 욕심과는 달리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소박했다. 하지만 이재은은 구태여 과장해 연기하지는지 않았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셨다. 당시에도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치매에 걸린 당사자는 정말 진지하고 대부분은 순수하지 않나”고 되물었다.

이어 이재은은 “아무 장치 없이 하는 70대 노인 역할이라 대중의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내 얼굴이 동안이다 보니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감안했다. 주변 지인과 선배, 스태프의 조언을 듣고 거기에 내 색깔을 입히려고 노력했다. 그냥 최대한 편안한 모습으로 재미있게 해볼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물에서 나올 때 뿜는 깊은 숨소리로 제주도 방언. 어머니의 한을 숨비소리에 빚대, 우리네 어머니의 들숨과 날숨의 깊은 숨소리를 들려 드리고 싶다는 게 이재은의 생각이다.

“숨비소리는 한 어머니의 맺힌 한일 수도 있지만 그냥 삶 자체일 수도 있다. 대사 중에 ‘아들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줘 고맙다’가 있다. 노모가 제정신에 아들에게 해주는 그 말 한 마디에 울고 가는 관객이 많다. 돈을 좇고 싶지는 않다. 따뜻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두심·메릴 스트립 닮고파

아역시절부터 시작해 어느새 30년차 연기생활에 접어든 이재은에게도 롤 모델이 있다. ‘고두심’과 ‘메릴 스트립’이다. “두 배우는 어떤 역할이든 잘 어울린다. 국민 어머니든 소탈한 아줌마든. 마치 팔색조 같다. 고두심 선배와 메릴 스트립처럼 연령대를 떠나 연기할 수 있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

먼 미래의 꿈도 밝혔다. “마음에 맞는 연출가, 작가 등과 의기투합해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한국적이면서도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하고 싶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남편과 장르 파괴적인 새로운 예술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꿈이다.” 남편 이경수 씨가 제작에 참여한 연극 ‘숨비소리’는 다음달 1일까지 서울 이화동 대학로 예술마당 1관에서 이어진다.
“연기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배우 이재은이 30년 연기인생 처음으로 치매를 앓고 있는 70대 백발 노인을 연기중이다. 화장 안 한 그야말로 ‘생얼’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선 이재은의 내공이 느껴졌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연기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배우 이재은이 30년 연기인생 처음으로 치매를 앓고 있는 70대 백발 노인을 연기중이다. 화장 안 한 그야말로 ‘생얼’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선 이재은의 내공이 느껴졌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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