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가을 이사철과 맞물린 극심한 전세난 속에 집주인들이 재계약을 앞둔 세입자들에게 수천만원에 달하는 전셋값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반전세로 돌리고 있지만 이럴 경우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은 두 배 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지난 2년새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강북구 일대 주택 밀집지역. [사진=서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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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서울 강북구 미아동 아파트(전용면적 84㎡)에 전세로 살고 있는 회사원 최모(38)씨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집주인이 2억4000만원이던 전셋값을 6000만원이나 더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씨는 주변에서 적당한 가격의 전셋집을 찾지 못했고 직장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수도 없었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리는 대신 그만큼 월세를 내는 ‘반전세’(보증부 월세)를 제안했다. 추가 전세금 대출을 받기 부담스러웠던 그는 결국 한달에 34만원씩 내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했다.
극심한 전세난 속에 상당수 세입자들이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가격 상승분을 월세로 주는 반전세로 전환하고 있다. 수천만원씩 전셋값을 올려주는 것보다 한달에 30만~40만원씩 월세를 주는 편이 부담이 적다는 ‘착시 효과’가 반전세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순위 임차인이면서 세든 집의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적정한데도 반전세로 돌리면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은 두 배가량 늘게 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발표한 ‘10·30 전월세 대책’에서 반전세 등 전세의 월세 전환 추세를 인정하면서도 세입자 주거비 증가에 대한 뾰족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6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12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2년간(주택 임대차 기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용 84㎡형 기준 2억9464만4000원에서 3억3660만원으로 4195만6000원(14.24%) 올랐다. 반면 평균 매매가는 5억4978만원에서 5억4080만4000원으로 897만6000원(1.63%)이 떨어졌다.
집주인들은 아파트값이 떨어지자 세입자를 상대로 전셋값을 올려 손해를 만회하려는 모양새다. 그러나 올린 전세금(4195만6000원)을 2년짜리 정기예금(2.3%)에 넣더라도 떨어진 아파트값의 20%(195만2000원)정도만 이자로 벌충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서울지역 3분기 전월세 전환율(전세를 월세로 전환시 이율)인 7.2%를 적용해 반전세로 돌리면 한달에 25만2000원씩 월세를 받아 집값 하락분의 70%가량(604만2000원)을 메꿀 수 있다. 아파트값이 떨어진 집주인은 반전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입자의 경우에는 추가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세금을 올려주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현재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이자는 평균 3.75%가량으로 전셋값 상승분을 빌릴 때 한달 이자가 13만원 선에 불과하다. 반전세 월세 부담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대출을 통해 최대 8000만원까지 전세금을 올려줘도 한달 이자(25만원)는 반전세보다 적다 .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월세 전환을 막을 수는 없지만 평균 전셋값 이하 주택에 사는 세입자에겐 저리 전세자금 대출을 늘려 주거비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며 “전세 세입자들도 선순위 여부와 전세가율 등을 고려해 반전세 전환과 전셋값 인상 중 더 유리한 쪽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