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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흑단 같은 머릿결, 여인은 가체가 무거운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가체 아래 귀밑머리는 미풍에도 살풋 흩날릴 듯 하늘거렸다. 화원이라지만 남정네의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 속 도도한 여인은 설렌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옷고름과 노리개를 꼭 잡았다. 화원의 눈길은 여인의 시선과 마주하지 못하고 뒷여백에 닿아 무심한 듯 흩어졌다. 그래도 풍성한 치마 밑 살짝 나온 하얀 버선코는 놓치지 않았다.
조선시대 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고즈넉한 담장을 넘어 화려한 도심 복판으로 외출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9월 2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디자인박물관에서 여는 ‘간송문화’ 전 2부 ‘보화각’ 전에 나온 것이다. ‘보화각’은 국내 첫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사비를 털어 미술관을 개관하자 스승인 위창 오세창이 ‘빛나는 보물을 모은 집’이란 의미로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세로 114.2cm 가로 45.7cm의 비단 화폭에 그려진 ‘미인도’는 간송미술관이 1938년 개관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대여 전시 외에는 일체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만큼 콧대가 높은 작품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3월 DDP 개관에 맞춰 기획된 ‘간송문화’ 전이 계기가 돼 드디어 미술관 문을 나섰다. ‘미인도’와의 친견을 위해 간송미술관 봄·가을 정기전 때 긴 줄을 기다려야 했던 관람객들은 이제 지하철역과 이어진 DDP 안으로 입장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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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금은 아파트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인 한강변 압구정의 여유로운 풍경을 담은 ‘압구정’도 선보인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병아리를 낚아채 도망가고 있는 장면을 해학적이면서도 절묘하게 포착해낸 긍재 김득신(1754~1822)의 ‘야묘도추’, 제비꽃 곁에서 나비를 희롱하는 고양이를 통해 어르신들의 장수를 축원한 단원 김홍도(1745~1806)의 ‘황묘농접도’ 등도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과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 등의 불교조각품과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명선’ 등 서예 작품도 관람객들을 맞는다. ‘명선’은 조선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에게 보낸 작품으로 추사와 초의선사의 우정이 담긴 작품이다.
총 112점이다. 간송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이 보유한 국보 12점, 보물 10점 가운데 문경오층석탑(보물 제580호) 등 이동이 불가능한 2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내놨다. 일반 8000원, 학생 6000원. 070-4217-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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