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삐딱한 자전거 핸들 그리고 전투기

  • 등록 2013-10-04 오전 7:00:00

    수정 2013-10-04 오전 7:00:00

[이데일리 최선 기자] 담벼락과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난 이후 자전거가 제멋대로다. 부딪칠 때 충격으로 핸들과 앞바퀴의 이음새가 느슨해지자 자전거는 자주 비틀거렸다. 중심 잡기도 쉽지 않다. 핸들과 바퀴가 ‘정(丁)’자를 그리지 못하고 삐딱하게 기울어진 때문이다.

공군이 대표적 노후 기종인 F-5E 전투기의 비행훈련을 중단했다. 지난달 26일 발생한 F-5E 추락사고 때문이다. 조종사는 간신히 전투기에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김모(32) 대위가 몰던 사고 기체는 이륙 직후부터 머리가 들리는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꼬리가 활주로에 닿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비상착륙을 시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한민국 영공을 지켜야 할 전투기가 공중에 뜨자마자 ‘시한폭탄’이 돼 버린 것이다.

김 대위는 이날 1시간 10분 동안 공중에 뜬 채 사투를 벌였다. 연료통을 모두 비워야 추락 사고가 나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 대위는 연료통이 모두 빈 것을 확인한 뒤 비상탈출을 시도했다. 기체는 민가가 없는 야산으로 향했다.

우리 군은 약 160여대의 F-4E, F-5E 전투기를 몰고 있다. 수령이 40년 가까이 된 기체들이 수두룩하다. 수십년간 고장과 수리를 반복하다보니 정상 조종이 힘든 기체들도 많다. 조종사 출신 군 관계자는 “조종간이 수평을 이루지 못하는 전투기가 많다”며 “조종간을 처음부터 삐딱하게 잡고 조종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군은 노후 기체들을 2019년까지 퇴출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전력 공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고민이 많다. 8조3000억원이 투입되는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이 막판 기종 선정 단계에서 엎어져 재검토 수순을 밟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차기 전투기사업 테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다. 전투기 도입의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무기 도입을 방위사업청이 주관하도록 한 정부조직법을 거스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전력 공백을 최소로 줄이겠다는 군 당국의 의지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2000년 이후 하늘에서 떨어진 F-5 계열 전투기만 9대다. 조종사 13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우리 국민은 조종사 한 명당 10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모아 영공 방어를 부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조종사는 삐딱한 조종간을 잡은 채 훈련에 임하고 있다. 전투기 문제를 둘러싼 군과 재정 당국의 조속한 협력과 결단력 있는 추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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