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올라있는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호화청사를 짓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부채규모만 5조3000억원에 이르는 한국농어촌공사는 전남 나주에 신청사를 지으면서 3.3㎡당 881만원의 건축비를 책정했다. 광주·전남권 아파트 분양가가 336만원이고 분양가에는 땅값과 건설사의 이윤까지 포함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돈을 얼마나 펑펑 쓰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똑같이 나주로 옮기는 한국전력 역시 3.3㎡당 건축비가 865만원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충북지역으로 옮기는 한국소비자원도 3.3㎡당 건축비를 871만원으로 책정해 주변 아파트 시세 489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통유리, 대리석바닥, 비데, 조각상 등 값비싼 건축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도로공사나 한국가스공사처럼 수영장을 짓는 곳도 있다.
청사의 크기도 문제다. 국토부 산하 9개 지방이전 공공기관 가운데 직원1인당 사용면적이 50㎡(약 15평)를 넘는 곳이 6곳이나 된다. ‘정부 사옥관리규정’에서 공무원 1인당 사무실 면적을 7∼17㎡로 규정한 것과 비교해 3~7배나 넓다. 부채 24조원의 한국도로공사는 경북 김천에 짓는 신청사의 연면적을 기존 청사의 4.5배로 늘렸다.
호화청사 짓기가 많은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100% 자체 재원으로 조달가능할 때 해당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신축청사 건축비를 높게 책정하는 걸 허용했다. 공공기관 건물을 랜드마크로 활용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데다 지방이전에 대한 반대급부를 청사크기로 허용했다면 한심한 일이다. 정부가 이 모양이니 산하기관이 흥청망청하는 것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기존 건물을 팔아 공사비를 충당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286개 공공기관의 부채총액은 463조원에 이르고 부채비율도 193%에 이른다.
공사비를 줄여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것이 맞다. 아니면 건물을 빌려쓰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지방 이전 147개 공공기관중 건물을 임차해 쓰겠다고 밝힌 곳은 26곳에 불과하다.이미 신축공사가 진행중인 곳도 있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곳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건축비를 줄이도록 주무부처가 나서 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