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영민 수습기자] “남편도 저도 전세는 처음이고, 근저당이라는 게 무슨 개념인지 잘 몰랐죠…그냥 전세는 돈을 주고 살다가 2년 지나면 돌려받는 건 줄 알았어요. ”
| (사진=게티이미지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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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만난 중국인 이모(28)씨는 지난 2017년 한국에 와, 2021년 8월 중국인 남편과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다고 했다. 전세 보증금은 1억1500만원이었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남편의 창업과 자녀출산계획 등을 앞두고 있어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계약을 했다. 이씨 부부의 계획이 흔들린 것은 지난달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안내문을 받았을 때였다. 이씨는 “우린 보증금 1억원이 넘어서 최우선 변제도 못 받는다더라”면서 “이 집에서 내쫓기면 새로 살 월세 보증금을 모으느라 남편은 공사장에서 막노동까지 하며 주말 없이 일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씨 부부와 같은 외국인 피해자들도 나오고 있다. 외국인은 언어장벽은 물론, 전세 제도에 대한 낮은 이해로 사기에 더욱 취약한데도 피해 구제를 받을 길은 내국인보다 어려워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2년 한국에 처음 와 30년 넘게 살고 있는 중국인 김모(63)씨 부부도 ‘미추홀구 전세사기’의 피해자다. 김씨의 집은 보증금이 9500만원이라 최우선 변제 대상에 속하지만, 집이 은행에 가압류되면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4000만원 남짓으로 줄었다. 김씨는 “부동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려줄 곳도 없고, 일하느라 알아볼 시간도 없었다”면서 “평생 목숨 같이 생각하며 돈을 모았는데, 중개인 말만 들어왔다가 넘어가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국적을 가리지 않는 전세사기로 인해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 유학생들은 더욱 전세살이가 두렵다고 말한다. 지난해 8월부터 서울 서대문구에 살고 있는 중국인 대학생 안지아치(24)씨는 “친구들이 집주인과 부동산중개업자로부터 이사 때 터무니없는 비용을 청구받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한국어 계약서를 읽을 수 없고, 보장제도도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월세로 살 것”이라고 했다.
아일랜드에서 온 대학원생 맥헬렌(26)씨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사기 위험 때문에 더 비싸더라도 영어로 후기를 읽을 수 있는 에어비앤비 등 단기 임대 서비스만 주로 이용했다”면서 “졸업 후 한국에서 더 지낸다면 외국인지라 사기의 표적이 더 되기 쉽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전세사기도 계속 걱정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엔 전세사기에 대처하기가 내국인보다 어렵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저리 대출과 같은 금융지원을 받으려면 피해입증이 필요하고, 구청이 피해 확인서를 발급해주는데 외국인들은 거주지 등록을 안 하거나 거주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어 발급이 제한될 수 있고, 결론적으로 지원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경찰청 등에서는 ‘외국인 전세사기’에 대한 통계가 없어 실태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로부터 외국인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국인 사기 피해를 주로 상담해온 강성식 법무법인 공존 변호사는 “외국인들은 한국어에 서툴고 인적 네트워크가 없어서 구제를 받을 곳에 대한 정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분쟁이 생길 때 대책을 물어볼 수 있는 전용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위원 역시 “외국인은 국내법은 물론, 시세 정보 등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사기의 위험성이 더 높다 며 “계약 전이나 전세 사고 발생 시 공인중개사나 변호사를 연결해 상담받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