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 기수의 힘찬 외침과 함께 수백년 전으로 시간여행이 시작됐다. 이윽고 새하얀 도화서 복장을 한 새내기들이 도착한 곳은 조선 영조 임금의 오순 잔치인 ‘어연례’(御宴禮)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무대였다. 무용단원 중 한명이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정재(고려·조선 궁중무용)를 익히게 될 것”이라며 시범을 보이자 새내기들은 흥겹게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자연스레 임금의 잔치에 참여했다.
6일까지 창경궁에서 열리는 ‘시간여행-영조, 홍화문을 열다’의 체험 모습이다. ‘2023년 봄 궁중문화축전’(4월 28~5월 7일)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다. ‘궁중문화축전’은 아름다운 고궁을 배경으로 다채로운 전통문화 활용 콘텐츠를 선보여 온 국내 최대 문화유산 축제다. 지난해 봄·가을을 합쳐 총 89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는 ‘오늘, 궁을 만나다’를 주제로 다채로운 문화 체험과 전시, 공연을 선보인다.
조진영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활용실장은 “창경궁 명칭 환원 40주년을 기념해 궁에서만 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그동안의 행사에서는 의례를 재현하기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참여자들이 의례 전체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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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회화’ 체험으로는 창경궁 경춘전에서 전통의궤 전문가가 선보이는 궁중의궤 기록과정(궁중연향도) 재현과 궁궐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날 밑그림이 그려진 ‘궁중연향도’ 앞에 앉은 새내기들은 붓에 물감을 묻혀가며 진지하게 그림을 완성했다. 조교들이 중간중간 돌아다니며 그림의 완성을 돕는다. 조진영 실장은 “의궤를 그리는 장소인 ‘경춘전’은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는 곳”이라며 “전통 안료로 채색하기 때문에 하얀 복장에 물감이 묻더라도 금세 닦인다”고 설명했다.
명정전 옆에서는 고임상 준비가 한창이다. 고임상이란 의식이나 잔치에 사용하는 떡, 과자, 강정, 과일 등의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린 상을 말한다. 궁중무용과 그리기 체험을 끝낸 새내기들은 이곳으로 이동해 직접 고임상 차림에 참여하게 된다. 궁중음식 보유자인 정길자씨가 상차림에 자문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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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정 인근에서는 ‘장악원, 가객을 초빙하다’를 주제로 민간 가객의 판소리, 탈춤 등의 버스킹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영춘헌에서는 현장 관람객을 대상으로 문관과 나인 등 궁궐 내 증강현실(AR) 인물들의 복식을 입어보는 궁중복식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인 6일에는 모든 준비과정을 마친 영조의 어연례 공연이 펼쳐진다. 1743년에 거행된 어연례는 문무백관과 왕세자를 비롯한 종친, 정예 군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조선 궁중연회의 백미로 손꼽힌다. 재현 공연 이후에는 춘당지로 이동해 전통다과를 시식한다. 전통예술공연단체 ‘아울’의 가악과 창작판굿 공연을 관람하는 식후 행사를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이 모두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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