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금융권의 채용시장은 평사원 기준으로 여성의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임원진으로 올라가면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80년대 은행의 공개채용 공고를 보면 왜 여성 인재풀이 부족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취업대상자는 특정성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대졸 혹은 졸업 예정자로 군을 마쳤거나 면제자로 특정했다. 여성은 고졸 중심의 공개채용이었고, 극히 소수가 대졸 여성으로 채워졌을 뿐이다. 군을 마친 남성은 가산점까지 주어져 당시 금융권의 취업 장벽이 얼마나 여성에게 불리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제도는 2001년까지 진행되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그 이후에도 여성 인재를 고위층까지 육성하기 위한 파이프라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당시 아이를 낳아도 은행을 다닐 수 있었던 외국계 은행에 취업한 필자는 여성의 불모지였던 외환딜러에 발탁되었고, 이는 국내은행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채용사례로 남았다.
최근 국제금융중심지 국가들은 한결같이 이사회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홍콩, 싱가포르 등은 증권거래소가 기업에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 통계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상장규칙을 제안하고 있다. 2020년 일본금융청도 기업의 고위관리직에 다양성을 촉진하는 정책인 기업지배구조법 개정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달 영국금융감독청인 FCA는 상장기업의 이사회 다양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장규칙 변경을 제안했다. 즉, 기업 내 임원의 40% 이상이 여성(여성이라고 자인하는 사람 포함)이어야 하며, 적어도 한 명은 소수 민족 출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런던증권거래소의 전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이 같은 운용 방침을 적용규칙으로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는 ESG 경영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선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ESG 경영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환경(E) 분야의 평가 기준은 어느 정도 개발되고 있지만, 다양성, 인권, 사회적 책임 분야(S)나 기업윤리 지배구조(G)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이슈와 지배구조 이슈는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이사회의 다양성을 내세워 미국경영계의 지도를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국제금융 중심지의 진입을 추구하고 있으나 그동안의 실적은 미미하다. 특정 지역을 국제금융중심지로 추가하자는 하드웨어적 논쟁보다는 이젠 국제금융중심지들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어떤 접근을 하는지 기본부터 살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