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性다양성, 금융업 생존의 필수조건

  • 등록 2021-08-30 오전 6:10:00

    수정 2021-08-30 오전 6:10:00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기업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본시장법이 작년 1월 개정됐다. 이 법의 취지는 현재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이사회가 거의 남성이 독점하고 있으니 여성을 채워 성별 다양성을 갖추라는 것이다. 이 제도가 아직 도입 초기 단계라 하지만 올해 국내 금융권의 대응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특이하게도 상장기업인 금융지주사는 여성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법적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법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은 은행이나 증권 보험사 등은 오히려 법 개정 이전보다도 여성 임원 수가 줄어드는 기현상을 보였다. 이유는 여성인재풀의 부족이라고 한다.

현재 금융권의 채용시장은 평사원 기준으로 여성의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임원진으로 올라가면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80년대 은행의 공개채용 공고를 보면 왜 여성 인재풀이 부족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취업대상자는 특정성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대졸 혹은 졸업 예정자로 군을 마쳤거나 면제자로 특정했다. 여성은 고졸 중심의 공개채용이었고, 극히 소수가 대졸 여성으로 채워졌을 뿐이다. 군을 마친 남성은 가산점까지 주어져 당시 금융권의 취업 장벽이 얼마나 여성에게 불리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제도는 2001년까지 진행되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그 이후에도 여성 인재를 고위층까지 육성하기 위한 파이프라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당시 아이를 낳아도 은행을 다닐 수 있었던 외국계 은행에 취업한 필자는 여성의 불모지였던 외환딜러에 발탁되었고, 이는 국내은행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채용사례로 남았다.

최근 국제금융중심지 국가들은 한결같이 이사회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홍콩, 싱가포르 등은 증권거래소가 기업에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 통계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상장규칙을 제안하고 있다. 2020년 일본금융청도 기업의 고위관리직에 다양성을 촉진하는 정책인 기업지배구조법 개정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달 영국금융감독청인 FCA는 상장기업의 이사회 다양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장규칙 변경을 제안했다. 즉, 기업 내 임원의 40% 이상이 여성(여성이라고 자인하는 사람 포함)이어야 하며, 적어도 한 명은 소수 민족 출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런던증권거래소의 전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이 같은 운용 방침을 적용규칙으로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비록 다양성이 사회정의의 이슈라 할지라도 금융업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므로 다양성 요건을 무조건 갖추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치열한 브레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금융업의 경우 한쪽 성만이 이사회에 참가한다면 전체 자원의 절반만을 동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다양성은 금융업 생존에 꼭 필요하다. 다양성은 여성에게 힘을 주는 도덕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올바른 거시경제정책. 사회정책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는 ESG 경영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선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ESG 경영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환경(E) 분야의 평가 기준은 어느 정도 개발되고 있지만, 다양성, 인권, 사회적 책임 분야(S)나 기업윤리 지배구조(G)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이슈와 지배구조 이슈는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이사회의 다양성을 내세워 미국경영계의 지도를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은 현재 여성과 남성이 서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때아닌 젠더갈등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여성가족부 폐지까지 내세우는 대선주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젠 특정성을 앞세우기보다는 부족한 분야의 다양성을 개발하는 시대다. 이참에 여성만을 위한 부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여성가족부라는 이름 대신 싱가포르처럼 다양성이 함축된 ‘사회 가족개발부’로 바꾸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국제금융 중심지의 진입을 추구하고 있으나 그동안의 실적은 미미하다. 특정 지역을 국제금융중심지로 추가하자는 하드웨어적 논쟁보다는 이젠 국제금융중심지들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어떤 접근을 하는지 기본부터 살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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