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성명', 병원장들은 '사과'…이상한 의료계 대응

주요병원장 4인 "큰절이라도 하겠다" 국시거부 문제 대국민 사과
의대생들은 사과 없이 "시험치겠다" 지난달 공동성명서 발표
정부 "국가시험 수백개, 어느 한 시험만 예외 어렵다"
  • 등록 2020-10-09 오전 6:33:00

    수정 2020-10-09 오전 6:33:00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주요 대학병원장이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들이 국가고시 재응시 기회를 달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영훈 고려대학교의료원장은 8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의대생 국시 보이콧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했다. 김 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매우 힘든 시기에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문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크게 고개를 숙였다.
대학병원장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미응시 문제’ 관련 사과성명을 발표하기 앞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연수 서울대학병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김영훈 고려대학교 의료원장. 사진=뉴시스
사과 자리에는 김연수 서울대학교병원장(국립대학병원협회 회장), 윤동섭 연세대학교의료원장, 김영모 인하대학교의료원장(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 회장) 등도 참석했다.

김 원장은 신규 의사가 안나오면 의료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의대생들이 국시 재응시 기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코로나19 팬더믹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엄중한 시점에서 당장 27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못하는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심각한 의료공백이다. 의료의 질 저하가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그러면서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인으로서 또 선배로서 지금도 환자 곁을 지키고 코로나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 질책은 선배들에게 해달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6년 이상 학업에 전념하고 잘 준비한 의대생들이 미래 의사로서 태어나 국민 곁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고시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국시가 정상화되면 이번 의대생들은 이전과 다른, 국민들을 위한 진정한 의사로 태어날 것을 믿는다”고 이어갔다.

병원장 4인은 발표 직후에는 전현희 권익위원장과의 간담회를 가지고 해당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도 김 원장은 “국민들이 아무리 괘씸하게 보셨더라도 다시 기회를 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병원장들은 몇백번 큰절이라도 하라면 하겠다. 의대생들은 죄가 없으므로 선배들을 채찍질해달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10일 오후 한 전공의가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본관 앞에서 공공의대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처럼 선배 의사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사과 회견까지 연 모습과 달리 정작 의대생들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론이 극도로 나쁜 상황에서도 의사 집단휴진 사태가 끝나자 “시험을 보겠다”며 성명을 내는, 다소 낯뜨거운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 대표들은 지난 9월 24일 의사 집단거부 사태가 마무리된 뒤 격론 끝에 “전국 40개 의대·전원 본과 4학년은 국시에 대한 응시 의사를 표명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치 ‘누군가 시험 응시를 막았지만 사태가 해결됐으니 이제 시험을 보겠다’는 듯한 의대생들의 당당한 입장 표명에 여론은 더욱 싸늘해졌다.

의사 집단휴진과 의대생 국시 거부 공동행동이 여론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고, 결국 의협이 여당인 민주당과 의정협의서를 체결해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한 상황에 그다지 걸맞지 않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의사 정원확대 반대 등 의대생들 요구에 깔린 집단이기주의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여론은 마지막까지 사과나 자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의대생들의 행태에 완전히 등을 돌린 분위기다.

정부 역시 이같은 분위기를 다분히 의식한 듯 의료계 집단행동 종료 후 줄기차게 이어진 국시 재응시 여부 문의에 “불가하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이날 병원장 사과 이후에도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이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박 장관은 “국민의 양해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1년에 수백개씩 치르고 있는 국가시험 중 어느 한 시험만 예외적으로, 그것도 사유가 응시자의 요구에 의해 거부된 뒤 재응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정리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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