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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은 올 상반기 9285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가장 발전원가 싼 원전 가동률을 정상수준까지 끌어올렸지만 2분기 들어서도 적자폭을 일부 줄이는데 그쳤다. 국제유가가 올라 연료구매비가 오른 여파지만 현행 전기요금 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영향도 크다.
한전은 독특한 요금 체계를 갖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이용하는 수도, 가스, 통신서비스는 소비하고 싶은 만큼 구매하고 구매량에 따라 값을 치른다. 하지만 가정용 전기요금의 경우 전기를 많이 쓸수록 최대 3배 더 요금을 내는 누진제 구조다.
전기를 적게 쓰면 할인 혜택도 준다. 전기 사용량이 월 200kWh 이하면 최대 4000원을 할인해준다.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는 저소득층일 것이란 전제 아래 저소득층 복지지원 차원에서 도입한 필수공제 때문이다. 2018년 기준으로 958만 가구(전체 가구의 49%)가 혜택을 봤다. 한전이 깎아준 금액은 총 3964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전력을 적게 쓰는 사람이 반드시 저소득층이 아니라는 점이다. 1인가구나 맞벌이 가구와 같이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아 전력 이용량이 적은 가구들도 혜택을 받는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가구는 2017년 기준 약 562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10.9%를 차지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저소득층은 냉난방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주택에서 거주하는 탓에 오히려 전기장판, 전기온수기 등 사용으로 인해 평균보다 전기사용량이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며 “현행 전기요금 체계 아래서는 오히려 이들이 전기요금 지원대상에서 소외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전의 이상한 요금 할인은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농사용 전기요금은 산업용이나 주택용 전기요금의 절반 수준이다. 영세 농어민을 지원하기 위해 발전원가 미만 가격으로 전력을 공급한다. 가격이 싸다보니 일부 농가에서는 경유 대신 전기로 냉난방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기업형 농가에서 전기난방을 동원해 시설에서 바나나, 애플망고 등 고수익 열대과일을 키우고, 중국산 냉동고추를 수입해 전기 건조기로 말려 파는 경우도 있다.
한전은 왜곡된 요금체계를 개편하고 싶어하지만 전기사업법상 요금제도 변경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만 가능한 탓에 손을 못 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전기요금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통신요금처럼 다양한 요금제를 만들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장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 교수는 “전기요금 체계 전반을 정상화하는 대신 저소득, 차상위 계층은 요금할인이 아니라 에너지바우처 등을 제공해 사회안전망 차원의 복지정책 틀 안에서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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