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정보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속 ‘디옥시리보핵산’(DNA)에 담겨 있습니다. 세포의 핵 속에는 세포가 분열할 때 유전 물질을 전달하는 ‘염색체’가 23쌍(총 46개) 있고, 염색체 안의 DNA에는 유전정보가 깨알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유전정보를 기록하는 언어는 DNA를 구성하고 있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등 4개의 염기(복합화합물) 조합입니다. 컴퓨터가 이진법을 통해 ‘0’과 ‘1’로 세상을 구성하고 이해하는 것처럼, 네 가지 염기 조합이 인간의 설계도를 구성하는 셈입니다.
네 가지 염기는 위치와 순서가 바뀔 때마다 다른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다른 유전적 특성을 나타냅니다. 다만 모든 유전정보에 이렇다 할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고,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 DNA도 존재합니다. 비유하자면 넓은 도로를 차로 달릴 때 의미 없는 풍경이 지나가고, 간혹 나타나는 도시를 특정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DNA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약 1.5% 부분을 ‘엑손’(Exon)이라고 하고, 유전정보가 없는 부분은 ‘잡동사니’(정크) DNA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드문 특정 유전정보가 어느 위치에 어떤 방식으로 구성돼 있는지 알아보기 쉽게 표시한 것이 ‘유전자지도’입니다.
물론 유전자지도를 모두 밝혀냈다고 해서 인간의 설계도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영어를 알파벳만 겨우 아는 수준인데, 두꺼운 소설책 한 권을 얻은 상태와 같습니다. 염기가 글자, 한 장의 종이가 유전자, 이를 묶은 두꺼운 책이 DNA 염기서열을 모두 더한 ‘유전체’(Genome)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전체는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붙여 만든 말인데, 1920년 한스 빙클러 독일 함부르크대 식물학 교수가 처음 이름을 지으면서 독일어인 ‘게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로는 ‘지놈’이라고 읽습니다. 흔히 부르는 ‘유전자지도’, ‘게놈지도’, ‘지놈지도’가 모두 동일한 의미입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유전자지도를 통해 4가지 염기 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고 있습니다.
◇인류 생명의 비밀 밝히기 위한 ‘게놈프로젝트’
1977년 월터 길버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프레더릭 생어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유전체의 염기서열 해독 기술을 개발해 1980년 나란히 노벨화학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1985년 인간 유전자지도 연구의 필요성을 느낀 찰스 딜리시 미국 에너지국(DOE) 박사가 과학자들과 정부 관료를 설득한 끝에 1990년 ‘인간게놈프로젝트’(HPG)를 시작합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미국 정부 산하 기구인 에너지국과 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 6개국 과학자 3000여 명이 30억달러를 들여 약 2만 5000개로 이뤄진 인간 유전자를 완전히 분석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뛰어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입니다.
다만 유전자 수가 많은 것이 무조건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등에서는 인간이 가진 유전자가 침팬지보다 단백질을 두 배나 더 많이 만든다는 연구결과 등을 발표했습니다. 인간의 특정 유전자는 최소한 2~3개의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밝혀졌습니다. 이후에도 인간의 유전자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는 연구는 꾸준히 이뤄졌습니다. 지난 5월 미국 스티븐 잘츠베르그 그룹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간의 유전자 숫자가 2만 1306개임을 추정했고, 관련 내용은 생물 학술 데이터베이스 ‘바이오아카이브’를 통해 발표됐습니다.
◇유전자지도 완성으로 열린 ‘포스트게놈’ 시대
그렇다면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가 나온 걸까요. 중요한 것은 인간 유전자지도 완성 이후 ‘포스트게놈’ 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유전자를 검사해 유전병에 해당하는 잘못된 염기서열을 바로잡고, 염기서열이 다른 사람마다 특징을 이용해 각자에게 맞는 약을 맞춤형으로 처방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당장 거대한 생명현상의 신비를 완전히 밝혀 ‘무병장수’의 시대가 오지는 않았지만, 의학과 관련한 연구는 물론 생명공학기술을 컴퓨터기술과 접목한 BT(바이오기술)·IT(정보기술) 융합 연구와 사업화 등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구글은 미국 NIH와 유전자 분석 데이터 등에 대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구글은 유전자 분석 전용 클라우드 플랫폼 ‘구글 지노믹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전자지도, 1000달러→100달러 시대 내다본다
유전자분석 기술은 무궁무진한 활용도와 가능성 만큼이나 급속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초기와는 비교도 안되게 빠르고 저렴하게 유전자분석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 서양인 유전자지도를 만드는 데 13년 동안 총 2조 7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습니다. 이후 2007년 미국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유전자지도 완성에 4년 간 약 1000억원이, 2008년 제임스 왓슨 박사는 4개월간 약 15억원이 들었습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개인 유전자지도를 완성한 김성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2008년 7개월 동안 약 1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처음 게놈프로젝트에서 염기서열 분석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쓰였습니다. 하나는 전체 DNA를 연구하기 좋은 길이로 적당히 모두 자른 다음 염색체 지도를 만들어, 하나씩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은 무작정 분석하기 편한 대로 DNA를 잘라 모든 서열을 분석하고, 컴퓨터에 분석한 서열을 모두 집어넣어 그림조각 맞추듯 서열을 쭉 잇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잘라 분석한 것은 인간이 가진 세포 속 DNA를 한 줄로 풀어놓으면 지구와 달을 6000번 연결할 수 있을만큼 길기 때문입니다. 30억쌍의 염기서열로 구성된 DNA는 컴퓨터로 치면 약 3기가바이트 용량에 달합니다.
이후 한 번에 여러 개의 DNA를 동시에 해독하는 ‘병렬 해독 기법’이 개발되면서 유전자분석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DNA를 잘라낸 다음, 염기에 빛을 내는 물질을 달아서 광학 기기로 한꺼번에 여러 염기를 읽어내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이 분야 선두주자인 미국 일루미나는 한 사람의 유전자를 해독하는데 4만달러 이상이 들던 것을 2010년 일반인도 마음만 먹으면 유전자분석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인 1000달러까지 낮췄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새로운 기기 ‘노바식’을 선보이면서 “100달러에 한 사람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선언했습니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이사는 “현재는 개인이 유전자지도를 확인하기 위한 분석 가격이 1000달러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며 “앞으로 5년 내로 일루미나가 발표한 것처럼 100달러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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