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아주 가끔, 매우 드물게 소중한 존재와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그 존재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인생이란 길을 걷다 보면 그것과 조우할 때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인생을 통틀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인연(因緣)이라는 것.
|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고귀한 인연과의 시간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하거나, 잊어버리거나, 심지어 귀찮아 한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아끼지 못하는 어리석음.
인연의 소중함을 일찌기 간파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대표 저서 ‘코스모스’ 서문에 이렇게 썼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이 조그만 행성과 찰나의 순간을 내 아내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을 더 없는 기쁨으로 생각한다.”
촌스러운 심학산에 놓여진 천국으로 가는 계단
이 산을 오르며 이 산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와 서패리에 길게 자리를 틀고 있는 산, 심학산.
그 이름의 유래는 어딘가 촌스럽다. 조선 숙종 시절 왕궁에서 기르던 학이 도망쳤는데 수소문 끝에 이 산에서 찾았다 하여 찾을 심(尋), 학 학(鶴) 자가 붙여졌단다. 그 높이를 알면 그 촌스러움이 더 커진다. 동네 뒷산이라고 불리어도 좋을 해발 194m짜리 야트막한 산.
값비싼 캠핑 장비와 아웃도어 의류가 판을 치는 요즘 이런 산은 산의 축에도 못낀다. “이걸 산이라고 불러야 되나, 언덕이지. 언덕.”이라는 주말 등산객들의 비웃음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하다.
|
심신을 정화하려 온 산에 왠 디스코 풍의 리듬이냐는 불평이 7대3 비율의 앞가름마와 회색 양복에 정장 구두를 신은 중년남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체념으로 바뀐다. 아, 촌스러워. 이 산은 이런 산인 게야.
낙엽이 수북히 떨어져 있는 흙길을 걷다보니 양옆으로 경고문들이 붙어 있다. 배를 함부로 따지 말라는 둥, 지정된 등산로 외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둥. 이거 진짜 촌스럽구만.
고상한 산행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250m 정도 오르니 산 정상으로 나 있는 계단이 나온다. 나무로 만든 계단. 이 까짓 거 한 걸음에 올라가 주마라는 생각은 정확히 15분 뒤에 바뀌었다.
48도쯤으로 추정되는 경사. 가파르다. 땀도 차고, 숨도 찬다. 246개의 계단. 영화 ‘록키’의 실버스타 스탤론으로 빙의했던 심정은 온데 간데 없다. 어느 산을 오르든 그 앞에선 겸손해야 한다는 진리.
|
헐레벌떡 정상에 오르자 동서남북 사방이 뚫려 있다. 가로 막은 게 없으니 보일 수 있는 것은 다 보인다. 정상 낙조전망대에서 동쪽에서 굽이친 한강 물줄기가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끼고 돌아오는 임진강과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것이 이 산이 갖고 있는 존재 이유다. 촌스럽지만 세상을 품안에 품을 수 있는 넉넉함. 부모님의 품이라는 이름의 천국.
그래서 이 산에 나만의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로버트. 밴드 레드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는 노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을 듣는 이의 영혼에 새겨질 만큼 멋지게 부른 친구였다. 촌스럽지만 멋진 산, 나만의 로버트다.
|
파주에서는 국수를 먹어보자
|
심학산에서 10여km 떨어진 파주시 조리읍에는 시도 때도 없이 줄을 서서 먹는 뇌조리 국수집(031-946-2945)이 있다. 갈쌈국수가 대표 메뉴. 갈쌈국수는 잔치국수나 비빔국수에 구운 돼지 고기를 곁들여 먹는 국수다. 면과 고기, 그리고 반찬으로 나오는 마늘을 한 입에 넣어 먹으면 그 조화로움이 입안에서 녹는다.
|
심학산 가는 길
승용차: 강변북로를 타고 가다 자유로에 들어선 뒤 문발 나들목에서 빠져 나온다. 이어 문발 고가 차도 옆에서 우회전 한 뒤 파주출판단지 삼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해 직진하면 심학산 둘레길 입구에 닿는다.
버스: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에서 1100번 직행버스를 탄 뒤 경기도 일산 가좌동 당음마을에서 일반버스 20번을 갈아타고 박사골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가좌동 양우대우아파트에서 77번 버스를 타도 심학산 입구에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