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도 정책위원 자리를 하나 줘야하지 않느냐`는 정치적 타협을 한 이탈리아와 프랑스 정부의 압박에 못이겨 임기도 못 채운채 옷을 벗게 된 로렌조 비니 스마기(사진) 정책위원이 ECB 신뢰에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10일(현지시간) ECB는 스마기 위원이 오는 2013년 5월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1년 이상 앞둔 올해말 위원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발표한 ECB나 조기 사임을 결정한 스마기 위원 모두 왜 이렇게 일찍 물러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이지만, 시장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압박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정황은 충분하다. 앞서 스마기 위원은 지난달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인선과정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드라기 총재가 ECB 총재로 자리를 옮기면서 생긴 공석을, ECB 위원이 메우는 형식으로 모양새도 좋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내부 승진을 주장하며 스마기 위원을 총재로 임명하려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반기를 들었고, 이에 밀린 총리는 어쩔 수 없이 이그나치오 비스코 부총재를 총재로 승진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탈리아의 이같은 결정이 전해진 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고, 이를 의식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스마기 위원의 조기 사퇴를 종용해왔다. 배후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압박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달 EU 정상회의에서 비공개로 사르코지 대통령과 이 문제로 면담했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사르코지가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 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스마기)를 죽이기라도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 과연 정치로부터 독립돼 있나
결국 이같은 스마기 위원의 사임 배경은 ECB가 스스로 강조하는 `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특히 이를 방증이나 하듯이, 스마기 위원이 사퇴 의사를 밝힌지 채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ECB 안팎에서는 벌써 브느와 꾀레 프랑스 경제재정산업부 부총국장과 암브로이 빠욜 국제통화기금(IMF) 이사가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날 ECB는 성명서를 통해 "스마기 위원은 6년간의 ECB 생활에서 ECB의 독립성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고 치하했지만, 정작 그런 스마기 위원으로 인해 스스로의 신뢰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사안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앞서도 ECB의 부양적 정책기조나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에 반대했던 악셀 베버와 위르겐 스타크 두 독일인 이사 역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ECB를 떠났다.
이에 대해 한 시장 애널리스트는 "ECB가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할 뿐더러 은행내 반대 목소리마저 수용하지 못하면서 자칫 교조적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