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장은 "하루 환자 10명도 못 볼 정도여서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수익은커녕 직원 월급도 못 줄 판"이라고 했다. 그는 2명의 고용 의사 중 한 명을 내보낼 예정이다.
웬만한 크기의 의원 한 달 임대료가 1500만~2500만원인 서울 강남역 주변은 '의원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다. 불황으로 환자가 줄면서 고액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과 개업의 L모 원장은 "라식 등 시력교정술을 하는 안과들이 포화상태"라며 "임대료가 절반 수준인 강남 외곽으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이곳 200여 개의 의원 중 30~40여 개가 임대료가 저렴한 양재역, 선릉역, 신사역으로 빠져나갔다. 압구정동에서 청담동으로 이어지는 '성형 벨트'에도 의원을 접겠다고 나온 매물이 70~80개 이른다. 한 성형외과 개업의는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접고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질병 치료보다는 미용의료에 치중한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가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 침체로 우리 국민이 아파도 병원을 가지 않고 참는 바람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2조원가량 남을 정도니 미용의료 쪽은 오죽하겠냐는 것이 개원가의 반응이다. 한 달 매출이 20억원이 웃돌던 소위 '빅(Big) 5' 성형외과 중 한 곳이 조만간 부도가 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당시 800원대이던 환율은 지금 2배로 뛰었고 대출이자마저 6%대로 치솟았다. 갚아야 할 원금은 두 배, 이자는 3배가 됐다. '엔화 자금'으로 프렌차이즈 치과를 늘린 A원장은 "여기에 불황까지 겹쳐 엔화 자금을 쓴 의원들 사이에 도산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상황"이라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일부 병·의원이 진료비를 덤핑하고 과대광고를 하는 등 유통질서도 혼탁해지고 있다. 200만~300만원 하던 치아 임플란트는 120만원대까지 떨어지고 150만~200만원 하던 라식 시술을 70만원에 해주는 안과도 나타났다. 쌍꺼풀 수술을 30만원에 하는 의원도 등장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5~10명이 한꺼번에 라식을 받으면 한 명치 분을 무료로 해주는 '공동구매 이벤트'도 벌어지고 있다. 이는 진료비 할인을 통한 환자 유인 행위로 의료법상 금지돼 있다.
등에 따르면 이들 의원들에게 과대광고를 중지하라는 경고장을 보내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의원들은 아예 고(高)환율 특수를 노리고 미국·일본 등 해외 교포 환자 유치로 방향을 틀고 있다.
내년 1월에 전문의를 취득하고 개업가로 진출하려던 의사들도 대학병원 임상강사나 종합병원 봉직의(奉職醫)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K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예년 같으면 임상강사 구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요새는 먼저 찾아와 문의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상황을 두고 그동안 지나치게 과대 경쟁했던 거품이 빠지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은 이미 포화 상태였는데 '건강보험 환자' 진료에 큰 수익이 나지 않자 '비(非)보험' 분야로 너무나 많은 의사들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병·의원 마케팅 전문회사 '톨리브' 김백남 대표는 "겨울방학 특수가 지나면 살아남는 곳과 없어지는 곳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자연스레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거품이 빠질 것에 대비해 되레 병원을 확장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