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회장 일단 구속 모면.."뉴 SK" 어디로 가나

손회장 사법처리 강도보다 대외 신인도, 이미지 하락 우려
SK "과거 정치자금 건드리면 누가 자유롭겠나"
  • 등록 2003-10-04 오전 11:26:37

    수정 2003-10-04 오전 11:26:37

[edaily 김수헌기자]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강도높은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지난 3일 밤 귀가함에 따라 SK그룹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검찰은 그러나 "손 회장이 수사 과정에서 2000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이 가운데 100여억원을 정치권에 제공한 사실을 시인했다"면서 "최종 신병처리 여부는 한차례 정도 더 소환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그간 검찰의 수사관행으로 볼 때 이번 귀가 조치는 결국 불구속 기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수사 사안이 비자금과 정치자금인데다 검찰이 이번 건을 계기로 정경유착을 뿌리뽑겠다는 의지도 보이고 있어, 손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의 향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SK는 "대기업이 정치권에 주는 자금은 당장 "특정" 대가를 바라보는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솔직히 말하면 향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보험 성격으로, 한국적 정치자금 거래 현실을 검찰이 충분히 고려해 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SK그룹 관계자는 "비자금 조성은 분명히 잘못됐다"면서도 "그러나 정치권에 앞에 약자일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마음대로 제공할 수 없었던 현실이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K로서는 손 회장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일단 면하기는 했지만, 분식회계에 이어 기업의 대외 신인도나 이미지 하락을 불러올 수 있는 비자금 사건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악재에 직면한 셈이다. SK는 최근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강화하고 투명경영의 의지를 알리기 위해 그룹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했다. 구조본은 그동안 그룹 계열사들의 주요 현안에 일일이 관여하면서 사실상 각 사 이사회 위에 존재하는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해 왔다. SK그룹은 지주회사격인 SK(003600)(주)가 투자 자회사들의 인사와 경영, 재무 등을 총괄지휘하되, 계열사 간 느슨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그룹 차원의 주요 현안은 수뇌부와 계열사 사장단이 모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결정하겠다고 그동안 강조해왔다. 이같은 "뉴 SK"를 향한 변신선언은 시장에서 나름대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변신을 제대로 추진해 보기도 전에, 과거 비자금 때문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손 회장은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에를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중인 상황에서 또다시 비자금 건으로 사법처리 대상이 됨에 따라 향후 파트너십 경영의 한 축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최태원 회장의 역할이다. 재계에서는 설사 손 회장이 구속되더라도 적어도 최태원 회장의 그룹 회장직 승계는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구조본 해체 이후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느슨한 네트워크 체제, 정보통신과 에너지 화학이라는 두 개의 핵심 사업축, 그리고 지주회사격인 SK(주)를 통한 계열 자회사 관리를 선언한 SK에게 있어 "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은 더 이상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SK 50년 역사를 일궈온 오너 패밀리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SK(주)의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여전히 SK그룹 안팎에서 지배력을 인정받고 있다. 친동생인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 사촌동생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그리고 고종사촌인 표문수 SK텔레콤 사장 등도 각 계열사에서 오너 패밀리로서 그리고 전문경영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아직 최 회장의 아직 경륜이나 연륜이 부족할 뿐 아니라 재판이 진행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SK그룹 회장"직을 논하기에 이를 뿐 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향후 SK그룹의 경영체제상 굳이 최 회장을 그룹 회장이라는 자리에 앉힐 필요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 회장은 SK네트웍스(001740)의 정상화 양상이나 속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경영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이렇게 본다면 "SK네트웍스 살리기"는 최 회장의 경영복귀와 자연스레 밀접하게 맞물리게 된다. SK네트웍스 살리기는 물론 그룹 주력사인 SK(주)의 에너지 유통망 유지라는 이유도 있지만, 최 회장의 경영활동재개와도 별도 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렵다. SK 비자금 사건은 어쩌면 SK네트웍스 정상화 작업에도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비자금 사건은 SK(주)의 최대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그동안 주장해 온 지배구조 개선 주장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공격무기"를 갖추게 된 소버린이 최 회장측과의 회동에 나서거나, 출자전환 논리를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소버린 뿐 아니라 노조, 소액주주 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SK가 비자금 악재를 딛고 SK네트웍스 정상화를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소용돌이 속에서 헤맬지 재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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