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림청 서울산림항공관리소 소속 정비요원들이 러시아산 카모프 헬기를 정비하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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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의 산불 진화 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진화 헬기의 주력 기종이 러시아산 카모프(KA-32)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하반기부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산림당국은 외국으로부터의 임차 헬기 도입 등을 검토 중이지만 예산 확보부터 운용·정비 등 새로운 기종의 도입에 따른 후속 조치도 쉽지 않아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산림청, 해양경찰청, 소방청 등에 따르면 산림청이 운용 중인 산불진화헬기는 지난해 9월 기준 모두 47대로 이 중 61.7%인 29대가 러시아산 카모프(KA-32)다. 산림청 외에 해양경찰청, 소방항공대, 국립공원관리공단, 경기도, 경상북도, 울산광역시 등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산불진화와 인명구조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2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로 부품 수급이 불가능해지면서 카모프의 가동률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다. 또 카모프 10대 중 7대 이상이 20년 이상된 ‘경년(經年) 항공기’이다.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을 보면 경년 항공기는 20년 미만 일반기와 비교해 각종 안전 점검을 더 강화해야 하는 대상이다. 카모프 등과 같은 대형 헬기는 50시간·100시간·300시간 등 비행시간 및 1·3·12개월 등 일정 기간마다 점검을 실시하는 데 경년헬기는 부품 교환 등 관리가 촘촘하다. 산불이 잦고, 동시다발로 발생하면 비행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어 그만큼 정비 부담이 커지게 된다. 미국과 유럽산 헬기는 국가 인증을 통해 대체품을 인정·사용할 수 있지만 러시아 제품은 전량 수입이 불가피하다. 헬기는 10년마다 대점검을 받아야 하지만 러시아 기술자의 방한이 어려워지면서 점검 대상인 카모프들이 정비를 마치지 못한채 다른 헬기의 부품으로 재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카모프 기종의 부품 돌려막기로 올해 산불을 버틴 셈이다.
올해 봄철에는 예년보다 동시다발적인 산불도 늘어 산불진화 헬기 운용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올해 1월부터 5월 15일까지 발생한 산불은 모두 497건으로 최근 10년치 평균에 비해 27% 증가했다. 피해 면적도 4654㏊으로 같은 기간에 비해 36%(3423㏊) 급증했다. 이 중 100㏊ 이상 대형 산불은 8건이었다. 산림청은 기온 상승 및 건조한 날씨, 강풍과 입목축적 증가 등으로 산불확산이 가속화 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내년 봄철에도 올해와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산불이 동시다발적이고 대형화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산림청 고위 관계자는 “오는 8월을 데드라인으로 설정, 만약 이 시점까지 대러시아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면 외국에서 대규모의 임차 헬기 도입 등을 포함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현재 관계부처와 협의에 들어갔으며, 예산 확보 등을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재원 확보이다. 헬기의 대당 가격이 중대형 270억원, 초대형 550억원 등에 달하고, 외국에서의 임차 비용도 예년에 비해 2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산불 관련 전문가들은 “지상 산불진화 장비의 진입을 위한 임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산불 진화의 유일한 대안인 산불진화 헬기마저 문제가 생긴다면 산불 진화에 큰 공백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제한 뒤 “산림당국이 중장기적인 대안으로 미국산 초대형 산불진화 헬기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당장 내년 봄부터 산불 진화가 걱정이다. 산불 진화의 근본적 대안을 위해 임도 확충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