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설립 6년차 스타트업이 인수전에 승기를 잡았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시장에서 큰 관심이 있을까 하던 초록 마을이 흥행 끝에 새 주인을 찾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다. 최근 유통시장이 온라인 시장 패권 차지를 위해 피 튀기는 경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초록 마을이 보유한 470여개 오프라인 매장이 흥행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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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상홀딩스 측은 초록마을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로 정육각을 선정했다. 가격 등 세부 조건 조율을 거쳐 이달 중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정육각은 2016년 2월 설립한 신선육 특화 유통 기업이다. 1991년생 청년 사업가인 김재연 대표가 창업했다. 카이스트(KAIST)를 졸업한 김 대표를 필두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축산품 유통 과정을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록 마을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왔을 때 정육각이 인수할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몸값 4조원을 인정받은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와 이마트에브리데이, 바로고 등 이름값 있는 후보들이 인수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점치는 초록마을 몸값이 1000억원 안팎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금력에서 다소 여유 있는 앞선 후보들의 경합이 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육각이 예상을 깨고 가장 적극적으로 인수 의지를 내비치면서 우선협상자 자리를 꿰찼다. 업계에 따르면 정육각은 초록 마을 인수에 약 1200억원 안팎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육각이 투자유치를 받는 과정에서 연을 맺은 재무적투자자(FI)들을 활용해 자금조달 방안을 모색했고 인수자금 마련까지 성공한 것이다.
거점기지로서의 오프라인 매장 가치 껑충
사실 더 흥미로운 것은 초록마을이 예상을 깨고 다자구도 경쟁 속에 새 주인을 찾았다는 점이다. 최근 유통 지형이 이커머스(전자상거래)로 기울면서 오프라인 매장 사업이 예전같지 않아서다. 전국 약 470여개 매장을 보유한 초록마을이 시장에 나왔을 때 ‘흥행할 수 있을까’ 의문을 표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초록마을이 2018년부터 영업손실을 이어왔다는 점도 인수전 흥행을 우려하는 요소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리 여러 원매자가 인수전에 참여하며 열기를 띠었다. 초록마을 흥행을 이끈 핵심 키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초록마을이 보유한 470여개 점포에 있다.
대규모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한 매물의 저력은 앞선 사례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사례가 올해 1월 롯데그룹이 3133억원에 인수한 한국 미니스톱이다. 인수전 초반 당시만 해도 ‘흥행이 힘들 것이다’는 우려를 뒤집고 롯데그룹이 인수에 성공했다. 편의점의 근접 출점을 제한하는 자율 규약 때문에 점포 수 확대가 사실상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한국 미니스톱이 보유한 매장 수가 인수전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3월 글랜우드PE가 4140억원을 투자하며 2대주주(지분 25%)로 올라선 CJ올리브영도 마찬가지다. 글랜우드PE는 CJ올리브영이 보유한 전국 단위 유통망에 잠재력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CJ올리브영은 H&B 스토어 업계에서 시장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1위 브랜드다.
전국 1300개에 육박하는 매장 수를 바탕으로 한 막강한 오프라인 체인도 장점으로 꼽힌다.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온라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올라인’ 전략에서 보면 견조한 오프라이 인프라를 바탕으로 새로운 온라인 사업 전개에 나설 경우 시장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오프라인 매장 시대가 이제 저문 것 아니냐’고 하지만 온라인 배송 강화를 위한 거점기지로서의 오프라인 매장은 계속 치솟고 있는 셈이다. 초록 마을 인수전 흥행도 결국 이런 계산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물건을)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면 살수록 업체에서는 (신선도와 빠른 배송을 위해) 오프라인 인프라가 더 필요하다”며 “해당 매장이 지닌 부동산 가치는 덤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