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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지사가 결국 사퇴한다. 지난해 코로나19 초기 공격적인 대응과 함께 ‘쿠오모 대망론’까지 나왔을 정도로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으나, 끝내 몰락한 것이다. 다만 그는 혐의 자체는 인정하지 않았다.
쿠오모 “2주 후 주지사 사임할 것”
쿠오모 주지사는 10일(현지시간) 뉴욕시 맨해튼 사무실에서 TV 생중계 연설을 통해 “주지사 업무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사퇴 시점은 2주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뉴욕을 사랑한다”며 “뉴욕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후임 주지사직은 캐시 호컬 뉴욕주 부지사가 맡게 된다. 뉴욕 역사상 첫 여성 주지사다.
이날 발표는 쿠오모 주지사가 전·현직 보좌관 11명을 성추행했다는 뉴욕주 검찰의 발표가 나온 이후 일주일 만이다. 첫 성추행 폭로를 기준으로 보면 5개월 만이다.
지난 3일 공개된 검찰 보고서를 보면, 쿠오모 주지사가 피해 여성들에게 원하지 않는 키스를 강요하고 가슴과 엉덩이를 만졌으며 성적 모욕감을 느낄 만한 협박을 했다는 진술이 적혀 있다.
그러나 쿠오모 주지사는 여전히 성추행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특히 뉴욕주 검찰의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주지사직을 유지하면서 자신에 대한 정략적인 공격에 맞설 경우 주정부 행정이 마비될 수 있다”며 “스스로 물러나서 주정부가 정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내가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성추행 혐의는 인정하지 않지만, 주지사직을 던진 후 반격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그는 “나는 여러분을 위해 일한다”며 “(주정부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옳은 일을 하는 건 여러분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성추행 피해를 공개한 직원들에 대해서는 “너무 가깝게 생각했다”며 “불쾌한 마음이 들게 했다”고 사과했다.
다만 뉴욕주 내에서는 검찰 보고서 공개 이후 뉴욕주 의회의 탄핵 절차에 속도가 붙고 폭로전이 계속 이어지면서, 쿠오모 주지사가 사퇴 압력을 견디지 못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최근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일제히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쿠오모 주지사는 3선으로 민주당 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지난해 코로나19 당시 뉴욕주는 미국 내 최대 ‘핫스팟(집중 발병 지역)’이었는데, 쿠오모 주지사는 명쾌한 일일 브리핑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심지어 당시 민주당 내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바이든 대통령보다 존재감이 크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런데 한때 대망론까지 비등했던 거물 정치인이 한순간에 몰락한 것이다.
쿠오모 주지사는 집안 자체가 정치 명문가로 더 유명하다. 그의 부친인 마리오 쿠오모는 1983년부터 12년간 뉴욕주지사를 지냈다. 쿠오모 주지사는 1982년 올버니로스쿨을 졸업한 직후 25세의 나이에 아버지의 선거캠프에 합류했고, 마리오가 주지사에 취임한 후 정책보좌관을 맡았다. 그 이후 39년 정치 인생 내내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쿠오모 주지사의 사퇴로 제57대 뉴욕주지사로 오르는 호컬 부지사는 “쿠오모 주지사의 사임에 동의한다”며 “그것은 뉴욕 주민들을 위해 옳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의 모든 직급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며 “차기 주지사로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